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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월)

“의대는 엄마의 꿈이었단 걸 깨달았어요” [매경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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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수천명을 살리고
기업가는 수만명 먹여살려
의대든 공대든 우리의 미래

대한민국 최고 인재들에게
연구와 창업의 꿈 심어주자


매일경제

[사진출처=연합뉴스]


개인적으로 ‘2024 최고의 깨달음’으로 꼽는 대사다. 의정갈등으로 2학기째 휴학 중인 어느 의대생이 했다는 말, 부모는 속이 탄다지만 이 친구의 ‘진짜 꿈’을 열렬히 응원해주고 싶어서 쓴다.

공부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하던 친구 아들은 올해 입시에서 물리학도의 길을 택했다. 나도 모르게 “충분히 의대도 갈 수 있는 성적인데 왜 안간대?”라고 물었는데, 스스로가 너무 천박해 보여 얼른 입을 다물었다. 물리가 좋아서, 라는 현답에는 감탄마저 나왔다.

의정갈등을 취재하면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소중한 내 자식이라고,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 내 조카라고 생각하면서 진심을 다해 속내를 듣고 또 들었다. 뉴스를 따라가느라 신문에 쓰지 못한 이야기들은 가슴에 오래 남았다.

예닐곱살부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야 의대 합격증을 손에 쥘 수 있다. 의대에 들어가서도 책만 파고들어야 인턴·레지던트가 될 수 있고, 이후에는 다들 알고 있는 혹독한 수련이 이어진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 쳇바퀴에 제동이 걸렸고 경주마도 멈췄다.

“주 80시간, 주 100시간씩 일하면서도 그냥 다들 하니까 견뎌냈던 것 같아요. 막연하게 선배들처럼 되겠지, 세월이 가면 교수님처럼 되겠지 하면서요.”

어느 전공의의 말이다. 병원 밖으로, 의대 밖으로 나와보니 딴 세상이더란다. 지금까지 왜 그러고 살았나, 속된 말로 ‘현타’가 오더란다. 이제는 그런 현실 자각타임도 거의 끝난 분위기다. 일부는 다시 의료현장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다른 꿈을 찾아 떠났다. 의정갈등이 어떤 식으로 봉합되든, 예전과는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생각 있는 어른이라면, 이제 후배들에게 조금은 다른 이야기도 들려줘야 하지 않을까.

성상엽 벤처기업협회 회장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 울림이 있었다. “일론 머스크가 되고 싶다면 공대로 오라”니, “세상을 바꾸는 빅테크는 대부분 공학도가 만들었다”니, 문과 출신 아줌마 마음까지 설레었다. 지난주 매일경제신문에 소개한 윤지원 SDT 대표는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소식에 화가 나서 미국 박사 유학을 포기하고 창업했다”고 했다. 국내 유일의 양자컴퓨터 제조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내년부터 세계시장에 한국산 양자컴퓨터를 팔겠다고 한다. 윤 대표도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에서 물리학 학사와 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공학도다.

나이 지긋한 공대 교수님은 매경이 이런 기사를 많이 써달라고 했다. 카이스트 나와서, 서울대 공대 나와서 세상을 바꾸고 돈도 수백억씩 버는 박사들이 많다는 거였다. 헤어지는 길에 그분이 필자의 두 손을 잡으며 간곡하게 말했다. “중고생 엄마들이 많이 볼 수 있게, 꼭 헤드라인에 뽑아줘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초과학 연구자들도 공대 출신 창업가들도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통곡하고 있다. 지금 정부가 가장 열심히 해야 할 일은 연구하고 창업하기 좋은 환경, 한 두번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생태계, 마음 놓고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기회가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의대를 가든 공대를 가든 개인의 선택이지만, 모두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최고의 인재들 아닌가. 그들이 ‘진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박수쳐주고, 쓸데없는 장애물은 치워주는 것이 기성세대가 할 일이다. 그런 사회가 되어야 비로소 ‘엄마의 꿈’도 의대가 아니게 될 것이다.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다준다’는 인도 속담을 좋아한다. 뜻대로 되는 일 없는 것 같은 인생이지만 결국은 해피엔딩일 것 같아서다. 한심한 어른들이 멱살을 잡으며 고성과 욕설을 주고받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반짝반짝하는 눈빛이, 참 예쁘다.

신찬옥 과학기술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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