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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아동·청소년의 소셜미디어(SNS) 중독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호주 정부가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이용을 원천 차단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게 청소년의 SNS 사용을 금지하는 '초강수'로, 각국 정부와 플랫폼 기업들은 향후 여파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9일(현지시간) 호주 상원은 찬성 34표, 반대 19표로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부모의 동의 여부와도 상관없이 미성년자의 SNS 이용을 원천 차단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은 세계 최초이며, 적용 연령대도 지금까지 제시된 방안 중 가장 높다.
법안에 따르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스냅챗, 엑스(X) 등 SNS 기업들이 해당 연령 청소년의 계정 보유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최대 4950만호주달러(약 450억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반면 부모와 청소년에게는 벌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이 법안은 내년 1월부터 시범 운영을 시작해 1년 후 발효될 예정이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법안 통과 이후 "플랫폼들은 이제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장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부모들이 어린 자녀와 새로운 방식의 대화를 나눌 기회가 될 것이며, 이를 통해 호주의 젊은 세대가 더 나은 결과를 얻고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SNS 중독이 청소년에 악영향" 공감대 형성
정부가 청소년들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감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전 세계적으로 상당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소셜미디어 내에서 이뤄지는 괴롭힘이나 성희롱 등으로 인한 비극적인 사고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이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부모들의 요구가 증폭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서 호주의 청소년 SNS 금지 법안은 유권자 77%의 지지를 얻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9월 44개 국가 및 지역의 약 28만 명의 학령기 아동을 대상으로 SNS 사용 실태를 조사한 후, SNS 사용의 증가로 인해 청소년의 발달과 장기적인 건강에 광범위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즉각적이고 지속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미국 보건당국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매일 3시간 이상 SNS를 사용하는 12~15세 청소년이 우울증과 불안을 경험할 확률이 2배 더 높았다. 이는 청소년이 SNS에서 자신과 타인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한편, 사이버 괴롭힘에도 노출되기 때문이다. 미국 청소년의 95%, 어린이의 40%가 SNS를 사용하고 있어 이러한 부정적인 영향은 이미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현재 미국 플로리다, 텍사스주 등을 비롯해 프랑스, 영국, 노르웨이 등의 국가에서도 청소년의 SNS 사용 제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호주의 조치가 이들 정부의 움직임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외신들의 평가다.
트럼프 2기 내각에서 공중보건서비스단(PHSCC) 단장 겸 의무총감에 지명된 자넷 네셰이왓 박사는 앞서 SNS를 금지하려는 플로리다주의 움직임을 지지하며 "소셜 미디어가 사회의 모든 측면, 특히 젊은 세대에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청소년의 SNS 사용을 규제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16세 미만 청소년의 SNS 하루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김장겸 의원도 청소년의 중독성 콘텐츠를 규정하는 '청소년 필터 버블 방지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세 이상부터 SNS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연령별 SNS 금지 조치 '역효과' 우려도
아동·청소년을 SNS 중독 위험에서 구해야 한다는 옹호론에도 불구, 호주의 이번 조치와 같이 접근을 원천 차단하는 방식에 대해선 이견이 존재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소셜미디어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정확하게 구분짓기 어려운 가운데, 단순히 연령을 기준으로 SNS 사용을 금지할 경우 의도치 않은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하지 못한 채, 청소년들의 인터넷 사용이 오히려 음지화되고 접근 통제를 우회하는 방법만 발전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SNS를 활용하는 청소년들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SNS 접속을 원천 차단하는 방식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알고리즘을 제한하고, SNS의 올바른 사용을 위한 디지털 리터러시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유엔 산하 아동구호기관인 유니세프는 이번 법안에 대해 "아동의 온라인 안전은 최소 연령을 도입하는 것만으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유니세프 호주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호주 청소년의 81%가 소셜미디어가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며 "소셜미디어의 연령 제한을 높이는 것은 기술 회사가 플랫폼을 더 책임감 있게 구축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젊은이들을 처벌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케이티 마스키엘 유니세프 호주 아동 권리 정책 책임자는 "이번 법안이 청소년을 더 어둡고 규제되지 않은 온라인 공간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며 "청소년 계정 개설을 금지하는 대신 SNS 기업이 연령에 적합하고 안전한 온라인 환경을 제공하도록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와 인권 문제 역시 이슈다. 호주 정부는 청소년의 SNS 접근 제한을 위해 생체 인식 또는 정부가 부여한 신분증(ID)을 이용한 연령 확인 시스템을 만들어 시험할 계획이다. 다만 이런 방식이 개인 데이터 수집을 강화해 디지털 식별에 기반한 국가 감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이번 법안에 대해 "중국과 기타 비민주적 정권을 제외하고 가장 엄격한 인터넷 사용 제한"이라고 평가했다. 또 X는 법안 통과 이후 "법안의 적법성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X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는 "인터넷 엑세스를 통제하려는 백도어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규제 앞에 선 플랫폼 기업들, 엇갈린 운명?
청소년들의 SNS 사용을 금지하려는 국가 차원의 움직임에 대해 가장 위기감을 느끼는 건 해당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들이다. 이 같은 금지 조치가 확산되면 플랫폼 기업들은 광고주들이 탐내는 수백만명의 10대 청소년이라는 핵심 사용자 그룹을 빼앗기게 될 전망이다. 거의 모든 대형 SNS 운영사들은 이번 법안이 통과되기 전 상원 질의에 대한 답볍 제출을 통해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세계 최대 SNS 기업인 메타는 이 법안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며, 소셜 미디어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메타 대변인은 "증거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업계가 이미 연령에 적합한 경험을 보장하기 위해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입법을 서두르는 과정에 대해 우려한다"고 전했다. 스냅챗 모회사 스냅 대변인 역시 "호주의 법률과 규정을 준수할 것이지만, 해당 법률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전했다.
적용 대상 기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교육이나 창작, 게임, 메시지 등을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SNS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플랫폼 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튜브는 건강 및 교육 관련 플랫폼으로 간주돼 이번 제한 조치에서 제외됐고, 온라인 따돌림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던 메시징 서비스 '왓츠앱', '디스코드' 등도 빠졌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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