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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태평로] 법을 무기처럼 휘두른 이재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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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고발 남발해 온 이 대표

민주당도 걸핏하면 제소·고발

정치를 법정으로 끌고 가다

자기 정치 운명, 법정에 맡길 판

조선일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받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 출석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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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한때 ‘고소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내면서 정치인과 기자는 물론이고 네티즌, 친·인척까지 자신을 비판하거나 의혹을 제기하면 고소장을 넣어 수사를 받도록 했다. 지난 대선 때도 대장동 비리 관련 보도를 한 언론사들을 상대로 무차별 소송을 진행했다. 대장동 주범 김만배씨의 법정 증언을 보도한 것까지 문제 삼아 선관위에 제소하기도 했다. 대선 기간 한 언론사를 상대로 제소한 것만 30건이 넘었다.

이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도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이틀에 한 건꼴로 언론 기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그렇게 제소한 것의 태반이 기각되거나 취하됐다. 기자와 언론사를 압박하기 위한 제소였던 셈이다.

변호사인 이 대표는 정치를 하면서 정적을 공격하는 무기로 법을 자주 사용했다. 25일 선고 예정인 위증 교사 혐의 재판도 법을 무기처럼 사용한 사건과 무관치 않다. 2002년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KBS 최모 PD와 함께 검사를 사칭해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과 통화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 대표가 이 통화 녹취를 공개하며 김 시장의 부동산 비리 의혹을 제기하자, 김 시장은 “불법 통화 녹음을 공개한 비도덕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때 이 대표의 대응 방식이었다. 최 PD의 검사 사칭 통화를 곁에서 도왔고, 자신이 제보자인 것처럼 위장해 최 PD에게 그 통화 녹음테이프를 전달하는 장면을 연출해 촬영까지 해놓고는, 김 시장이 허위 사실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되레 고소했다. 이건 남을 해코지하려는 흉기처럼 법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이 사건으로 이 대표는 2004년 공무원 자격 사칭과 무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8년 경기지사 선거 때 검사 사칭 사건이 거론되자 이 대표는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다가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됐으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여기엔 김병량 시장 수행 비서였던 김진성씨 증언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김씨가 김 시장과 KBS 사이에 이 대표를 주범으로 몰아가는 협의가 있었다는 취지로 증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 백현동 개발 비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이 증언의 숨겨진 배경이 드러났다. 압수한 김씨 휴대전화에서 당시 증언을 하기 전 이 대표와 통화한 녹음 파일이 나온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른다”고 하는 김씨에게 이 대표가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KBS와 김 시장 간에) 교감이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면 딱 좋죠”라고 말한 대목이 녹음돼 있었다. 김씨는 재판에서 “이 대표 요구에 따라 위증했다”고 자백하는 증언을 했다. 최 PD도 법정에서 “대단히 경악스러웠다. 대한민국 변호사가 저런 거짓말을 지어낼 수 있다는 게”라고 했다.

누구든 수사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재판을 받으면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수사와 재판이 길어지면 심신이 피폐해지기 십상이다. 법을 잘 아는 정치인이 법 기술을 능란하게 구사하면서 상대를 압박하면, 그건 정치가 아니라 합법을 가장한 폭력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야 정쟁이 걸핏하면 고소·고발로 이어진다. 언론에 ‘OOO 고발장’이라고 적힌 봉투를 들고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정치인 사진이 너무 자주 등장한다. 아무리 민주주의가 법치라고는 하지만 우리 정치는 너무 법에 오염돼 있다. 25일 선고 결과에 따라 이재명 대표의 정치생명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정치인의 운명이 유권자와의 정치 현장이 아니라 법정에서 갈린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고소왕’ 이 대표는 이를 자초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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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식 뉴스총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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