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나가면 떵떵거리고 산다” 자랑
법적으로 범죄수익금 환수 쉽지 않아
피해자들 “한국이 사기공화국 됐다” 한탄
지난 4월 20일 오전 인하대학교 장례식장에서 전세사기 피해 사망자 D씨(30대)의 발인식이 진행되고 있다. D씨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중 2번째 사망자가 발생한지 사흘만인 지난 4월 17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D씨는 전세 보증금 9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로 아파트에서는 유서가 발견됐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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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인천에서 140억원대 전세 사기 범죄를 저지른 A씨. 피해자들 중 4명이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지만 지난 8월 항소심에서 법원은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7년을 선고했다. A씨는 2021년 3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전세 사기를 저지른 혐의를 받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재정 상황이 악화된 것으로 추정되는 2022년 1월 이후에 받은 보증금만 사기죄의 대상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별로 사정이 다른데 이를 하나로 인정하면 피고인의 방어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했다. 당시 한 방청객은 판결에 항의하며 “사기 공화국 대한민국 만세다”라고 외쳤다.
#사례2. 지난 8월 국내로 강제 송환된 보이스피싱 조직원 B씨. 그는 지난 2019년 ‘피해금을 돌려달라’고 호소하는 피해자를 조롱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했다. B씨가 속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지난 2017년부터 중국 항저우 등지에서 검찰청·금융감독원 등 공공기관을 사칭해 피해자들로부터 총 1511억원 상당을 뜯어냈다. 단일 보이스피싱 조직 피해금 기준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확인된 피해자만 1923명에 이른다. 피해자 중엔 현직 서울대 교수도 있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4년까지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범죄 유형은 ‘절도’였다. 하지만 지난 2015년부터는 ‘사기’가 절도를 앞질렀다. 검사 시절 30여 년간 사기 사건을 주로 담당했던 임채원 ‘법무법인 민’ 변호사는 조선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왜 한국에서 사기 범죄가 극성인지 알 수 있는 일화를 소개했다.
임채원 변호사는 “어느날 교도소 재소자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같은 방에 수감된 사기범들이 서로 사기 친 금액을 자랑하듯 밝히고 ‘지금은 고생하지만 나가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편지를 보낸 재소자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친이 사기를 당해 생활고를 겪었는데 그런 사기범들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편지를 보냈다고 하더라. 이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했다.
검찰이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 주거지에서 확보한 현금·수표·명품시계. /서울중앙지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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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수익금으로 호화생활, 지켜볼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
이처럼 사기범들이 감옥 안에서 희희낙락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범죄 수익금 환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임 변호사는 “사기범들은 범죄 수익금을 여러 차례 세탁해 차명으로 돌린다. 대부분 회수하지 못한다. 사기범이 아내에게 준 돈도 범죄 수익금이라는 증명을 하지 못해 회수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며 “그런 사기범들이 감옥에 다녀오면 숨겨둔 범죄 수익금으로 호화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사기의 경우는 범죄수익금 환수가 더 어려운 실정이다.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나 부패재산몰수법 적용대상에 전세사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발표에 따르면 전세사기로 지난 2년간 1만 6000여명의 피해자가 약 2조 5000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는데 몰수·추징된 범죄수익금은 약 1900억원으로 전체 피해액의 8% 수준에 그쳤다.
◇호화 변호인단 꾸리는 사기범들, 처벌은 솜방망이
임 변호사는 “사기범들을 기껏 체포해도 범죄 수익금으로 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한다”며 “사기 피해자들은 돈이 없어 변호사를 제대로 구하지도 못하는데 구조적으로 그들이 무조건 유리한 게임이다. 이런 상황이니 사기범들의 경우는 재범률도 높은 편”이라고 했다.
사기범들은 혐의가 입증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다. 사기 범죄는 수억원을 뜯어냈어도 피해자에게 피해 금액 일부를 환원하며 합의하면 집행유예가 선고되기도 한다. 법조계에선 “사기 치는데 성공만 하면 잡히더라도 무조건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온다.
지난 7월 2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신촌유플렉스 앞에서 열린 ‘신촌·구로·병점 100억대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구로구에 거주 중 1억 2천여 만원의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스무 살 청년이 발언 도중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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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기 범죄의 법정 최고형은 징역 10년이다. 다만 2건 이상의 사기를 저지른 피고인에게는 ‘경합범 가중’ 규정에 따라 징역 15년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그동안 사기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지만 개선이 되지 않았다.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피해액 300억원이 넘는 조직 사기에 대해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게 하는 등 사기죄 양형을 대폭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각에선 한국은 범죄자 교화를 중요시하는 대륙법을 채택하고 있는데 사기 범죄만 형량을 높인다면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임채원 변호사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범죄가 사기”라며 “형평성을 따지기 전에 민생 문제라고 생각하고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사기범들에게 날개 달아준 검경수사권 조정
검경수사권 조정이란 검찰의 직접 수사 범죄 범위를 제한하고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개정 형사소송법 및 검찰청법을 말한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은 5억원 이상의 사기 범죄만 수사할 수 있게 됐다.
이후 국내에선 사기 관련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지연되거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무혐의 종결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지능범죄(※사기‧위조‧횡령‧배임 등 높은 지적 능력을 이용해 저지르는 범죄) 발생 대비 검거율은 지난 2019년 70.0%를 기록했었지만 검경수사권 조정 시행 이후인 지난해 1~9월 기준으론 55.8%까지 떨어졌다.
임 변호사는 “정치적인 성향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절대 아니다. 이건 민생 문제”라며 “검찰과 경찰이 나눠서 하던 일을 경찰이 모두 떠맡게 됐다. 사기 사건은 점점 교묘해지는데 경찰은 법 전문가가 아니다. 당연히 사건 처리가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임 변호사는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동안 사기범들은 증거를 인멸하고, 또 다른 피해자를 양상 한다. 피해자는 수사를 기다리다 지쳐 피해 금액 중 일부만 돌려받고 사기범들과 합의를 하기도 한다”며 “이 와중에 베테랑 경찰들은 사건이 몰려 힘든 사기 수사 파트를 기피하며 대거 떠나고 있다. 오죽하면 일부 피해자들은 직접 사기범을 잡으러 다니기도 한다. 수사권 조정은 사기범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고 했다.
임채원 '법무법인 민' 변호사 |
◇ 처벌 강화로 감옥 다녀와도 이익이라는 인식 없애야
마지막으로 임 변호사는 사기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처벌 강화가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임 변호사는 “피해액이 300억원 이상인 사기 범죄를 저질러도 지금 일반사기 양형 기준 기본 구간이 6년에서 10년밖에 안 된다”며 “10년형을 받는다고 해도 따지고 보면 1년에 30억원씩 벌고 나오는 것 아닌가. 사기범들이 교도소에 가도 행복해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라고 했다.
임 변호사는 “1990년대 미국에서 한화 약 6000억원 규모의 보험사기를 친 사기범은 징역 845년형을 선고받았는데, 한국에서 1조원 규모의 다단계 사기를 친 IDS홀딩스 김모 전 대표는 지난 2017년 겨우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며 “사기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사기를 치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무조건 이익이라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기 범죄 처벌이 강화된다면 분명히 예방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가상자산 예치업체 하루인베스트 대표에게 법정에서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체포된 50대 남성이 지난 8월 3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남성은 '1조 원대 코인 출금 중단' 사건으로 손실을 본 투자자였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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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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