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업계 투자 우선순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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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 빅데이터, 바이오 등 기술 변화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건강한겨레’에서는 건강환경과 관련한 대표적인 키워드를 중심으로 변화를 살펴본다. 편집자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들의 새로운 격전장 중 하나로 ‘AI 신약 개발 분야’가 떠오르고 있다.
선두에는 2018년 ‘알파폴드’를 선보인 구글이 있다. 구글 딥마인드는 2016년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알파고를 개발했다. 그리고 불과 2년 뒤에는 ‘아미노산 서열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폴드를 내놓았다.
알파폴드는 ‘폴드’(Fold·접힘)라는 이름처럼 단백질의 접힌 상태를 포함한 단백질 구조를 분석·예측한다. 많은 질병이 단백질의 ‘잘못된 접힘’에 의해 발생한다. 딥마인드는 알파폴드가 “단백질 접힘을 기존의 어떤 모델보다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올해 발표된 알파폴드3는 단백질과 생체 내 분자 간의 상호작용을 예측한다. 알파폴드를 개발한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와 존 점퍼 수석연구원은 알파폴드 개발 공로로 2024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AI 시대’의 최대 수혜 회사인 엔비디아도 올해 1월 신약 개발용 생성형 AI 모델인 ‘바이오니모’를 선보였다. 엔비디아는 홈페이지에서 “바이오니모는 사용자가 보유한 데이터를 사용해 모델 구축과 트레이닝, 그리고 신약 개발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모델 배포 확장을 간소화하고 가속화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간소화와 가속화’라는 단어가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다. 전통적인 신약 개발 과정은 후보물질 발굴부터 독성실험까지 최소 4년 이상, 임상부터 허가까지는 최소 6년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바이오니모를 활용한 인공지능 신약 개발의 경우 평균 10~15년의 시간과 약 3조원의 소요 비용을 최대 7분의 1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게 엔비디아의 주장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2023년 9월에 주어진 단백질 서열을 기반으로 새로운 단백질을 생성하는 범용 프레임워크 ‘에보디프’를 오픈 소스로 공개하면서 이 부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신약 개발용 AI 소프트웨어를 선보이는 것은 이제 ‘신약 개발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인공지능임’을 잘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속화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회장 노연홍) 산하 ‘AI신약융합연구원’의 표준희 부원장은 그 이유를 ‘수요 측면’과 ‘공급 측면’으로 구분한다.
우선 수요 측면에서 볼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치료제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사회적·산업적 요구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표 부원장은 “신약 연구개발(R&D) 비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으며, 개발 속도 증가와 비용 절감에 대한 산업계의 수요가 높다”며 “또한 코로나 같은 감염병을 겪으며 빠른 치료제 개발에 대한 사회적 수요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코로나 백신 개발은 AI 기술이 접목되면서 가속화했다. 코로나 백신을 개발했던 빅파마(제약·바이오 대기업) 모더나의 경우를 보자. 세계 제1의 컨설팅회사 딜로이트에 따르면 “모더나는 AI 기술이 적용된 ‘메신저RNA(mRNA) 기술 플랫폼’ 등을 사용함으로써, 바이러스가 처음 시퀀싱(DNA 서열을 알파벳 순서로 읽는 것) 된 뒤 불과 42일 만에 1상 시험을 위한 첫 번째 코로나19 백신 후보군을 제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코로나 백신 개발 업체인 화이자의 경우도, AI를 활용해 코로나 유행 지역 예측과 임상시험 분석을 진행함으로써 mRNA 백신 개발을 10.8개월 만에 해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급 측면이다. “AI의 기술력이 이제 신약 개발이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함으로써 이런 수요를 가능하게 했기 때문이다. 표 부원장은 “신약 개발은 화학·생물학·동물실험·임상시험 그리고 규제과학까지 엮여 있어 다양한 전문가와 기술들이 함께 융합할 때만 성공 가능한 분야”라며 “AI 기술 수준과 데이터 생산량이 이제 이런 복잡성과 융합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수준이 됐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 컨설팅 기관인 아이큐비아는 전세계 의약품 시장이 2027년에 1조9170억달러(약 2683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참고로 반도체시장은 2032년에야 이와 비슷한 수준인 2조626억달러(약 2801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의약품 시장 가운데 AI 신약 개발 시장 규모는 아직 미미하다. 2027년 40억달러(약 5조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성장률은 빠르다. 2022년에는 6억달러(약 8400억원)에 불과했지만 해마다 45.7%씩 성장하는 추세다.
그러나 AI 신약 개발 성장률은 앞으로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딜로이트가 연 매출 10억달러(약 1조4천억원) 이상인 대형 제약바이오회사 간부 1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자. 이들 중 81%가 AI에 대한 투자를 우선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세계 제약바이오사들이 AI 신약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은 이 부분에 대한 투자가 신약개발 기간을 단축함으로써 수익성을 높이는 데 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표준희 부원장은 “AI를 이용해 신약 개발 기간을 2년 단축한다고 가정할 때, 줄어든 기간만큼 개발 비용이 줄어든다”며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특허 보호 기간의 사실상 연장”이라고 말했다. 표 부원장은 “신약 개발에서 신물질의 특허는 개발 초반에 등록하며 일정 기간 보호받는다”라며 “따라서 개발 기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남은 특허 보호 기간이 줄어든다”고 말을 이었다. 즉 개발 기간이 줄어들면 특허 보호 기간이 사실상 늘어나 큰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4월17일 진행된 ‘연합학습 기반 신약개발 가속화 프로젝트 사업단’ 개소식 모습. ‘K-멜로디’로 불리는 이 사 업은 각 제약사가 보유한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고도 데이터 활용·협력이 가능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보건복 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함께 추진하는 사업이다. 연합학습기반신약개발가속화프로젝트사업단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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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AI 신약 개발을 둘러싼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AI 신약 개발이 미래 먹거리로 등장하면서 각국의 지원도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은 이미 2017년부터 ‘아톰(ATOM, 의학 분야의 기회를 위한 치료법 가속화) 프로젝트’를 만들어 미국국립보건원(NIH)을 중심으로 슈퍼컴퓨터와 AI 기술을 보유한 정부 출연 연구기관, 제약기업, 의료기관이 참여하는 항암제 개발 AI 플랫폼 개발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영국도 2021년 ‘AI 데이터 국가전략’과 ‘생명과학 비전’을 수립해 AI 기술을 활용한 신약 개발 프로그램을 적극 지원해오고 있다. 이 밖에 중국은 2020년 바이오의료산업 전반의 AI 활용 전면화를 선언하고 그 일환으로 AI 신약 개발 플랫폼 구축 사업을 추진 중이며, 일본도 2022년 의약품을 ‘AI 개발 6대 중점 영역’ 중 하나로 선정하고 제약기업과 AI기업의 신약 개발 매칭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다양한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올해부터 본격 진행되고 있는 케이-멜로디(K-MELLODDY)도 그중 하나다. K-멜로디 사업은 연합학습기술 기반의 플랫폼 구축 사업이다. 연합학습기술 기반의 플랫폼 구축은 각 제약사가 보유한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고도 데이터 활용·협력이 가능하도록 하는 기법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주 사업자로 선정된 이 사업은 앞으로 5년 동안 정부가 348억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AI 신약 개발’이라는 새 흐름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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