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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여적] 한강 노벨상 ‘특별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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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을 제때 반납하는 것은 도서관 이용의 기본 에티켓이지만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도서관은 그럴 때 연체 기간만큼 대출을 제한한다. 공공재인 도서관 장서를 사회 구성원들이 편리하고 공평하게 이용하게 하려는 의도다. 연체료를 물리기도 한다. 1책당 1일 100원씩 연체료를 부과하는 식이다. 돈을 내면 연체 기간에 관계없이 바로 책을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연체료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돈만 내면 대출 기한을 어겨도 된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 일수 이자처럼 불어나는 연체료가 겁나 이용자가 아예 도서관에 발길을 끊을 가능성도 있다. 중학생 때 이후로 도서관에 한 번도 가지 않은 사람의 사연을 들었다.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중3 시절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요즘은 도서관들이 연체료 제도를 폐지하는 추세다. 연체료를 받아도 총금액이 대출 자료의 시가를 초과할 수 없게끔 규정을 두기도 한다.

도서 미반납은 사소해 보이지만 폐해가 심각하다. 책이 반납되지 않으면 도서관은 책을 대여할 수 없다. 사서들은 독촉 전화를 하느라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도서관 시스템이 망가진다. 서울시 산하 서울도서관이 최근 아이디어를 냈다. 다음달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시상식에 맞춰 ‘연체 사면’에 나서기로 했다. 채찍 대신 당근을 주는 셈이다. 서울도서관 관계자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한국 문학의 세계화와 책을 읽는 문화 조성에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만큼 연체 반납자에 대한 불이익을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장기 연체로 도서관 책을 빌릴 수 없었던 사람들, 이런저런 이유로 도서관 책을 찜찜하게 소장 중인 사람들에겐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도서관 이용에 갱생의 길이 열리고, 미반납 도서들이 대거 도서관에 돌아왔으면 한다. 참고로 도서관 책을 분실했다면 같은 책을 구해 반납하면 된다. 새 책이 아니어도 무방하니 헌책방에서 사도 되고, 시가로 변상할 수도 있다. 도서관은 최고의 복지시설이다.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열려 있어야 한다. 이번 서울도서관의 ‘특별사면’이 다른 공공도서관까지 확장됐으면 한다.

경향신문

한강 작가가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했을 당시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미소를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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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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