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폰 없으면 결제·예약 불가
유명 관광지도 현금·카드 안돼
지난 15~18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아내와 함께 중국 상하이를 찾은 한국인 관광객 김모(57)씨는 충격을 받았다. 무인 점포나 자판기는 물론이고, 식당이나 구멍가게에서도 현금은 물론, 비자·마스터 카드도 통하지 않았다. 오로지 중국 국내용 휴대전화 결제 앱이나 계좌 이체만 가능하다는 반응에 김씨는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그는 “길거리에서 물 한 병도 못 사 먹고 거의 죽을 뻔했다”고 했다.
최근 중국은 전자 결제 시스템 발전으로 “길거리 거지도 QR 코드로 적선을 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런 ‘중국 내수용 핀테크’의 발전이 오히려 외국인의 여행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달 초 장쑤성 쑤저우로 여행을 간 직장인 김모(33)씨는 지하철을 타려다가 난감한 상황을 겪었다. 중국 정부가 제작한 앱을 설치하고 이름·여권번호를 입력하라고 한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현지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야만 인증 후 가입이 가능하다는 메시지에 김씨는 기가 막혔다. “결국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마저 잔돈이 없다고 해 16위안(약 3000원) 거리에 50위안(약 9600원)을 냈다”고 했다.
대학원생 이은지(26)씨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간쑤성 둔황 ‘막고굴’을 보려고 지난 14일 출국했다. 하지만 이곳도 중국 현지 휴대전화 번호가 있어야 예약이 가능했다. 이씨는 “현장 발매 입장권도 금세 동나더라”라며 “한국에서 2800㎞ 떨어진 곳까지 왔는데 막고굴을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고 했다. 그는 “다시는 중국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최근 중국의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선 어느 한국인 여성이 “중국의 결제 시스템은 개선돼야 한다”라고 말하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상당수 중국인은 ‘우리는 몰랐는데 외국인은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부는 ‘한국의 결제 시스템이 후진적인 걸 왜 우리를 탓하느냐’ ‘한국인은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했다.
중국 당국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각종 조치를 내놓고 있다. 지난 3월 중국 국무원은 “현금을 사용 가능한 환경을 지속적으로 최적화하고 교통, 쇼핑, 엔터테인먼트, 관광, 숙박 등 분야에서 현금 지불을 보장할 것”이라며 “현금을 거부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홍보하고 사업주는 거스름돈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일선 업자들이 중국 정부 방침에 소극적으로 협조하는 탓에 외국인 관광객들의 불편이 지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유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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