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무책임한 핵 수사, 놀랍지도 않다”
1000일째 이어진 전쟁…무뎌진 ‘핵 위협’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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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이 ‘봉인 해제’된 데 대해 핵무기 사용 요건을 완화한 새 핵 교리(독트린)로 맞불을 놨지만 미국은 “별로 놀랍지 않다”며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19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발표한 새 핵 교리에 대해 “불행히도 놀라지 않았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을 시작한 이래 무책임한 핵 수사(레토릭)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세계 국가를 위협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의 자체 핵 태세를 조정할 어떤 이유도 찾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가 이날 발표한 핵 교리는 ‘핵보유국 지원을 받은 비핵보유국에 의한 어떠한 공격도 공동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서방의 핵보유국 미국과 영국,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를 정면 겨냥한 것이다. 이를 두고 러시아가 핵무기를 ‘억제 수단’에서 나아가 ‘불가피한 잠재적 보복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함부르크대 안보정책연구소 수석 연구원 알렉산더 그라프는 “전반적으로 볼 때 러시아는 재래식 공격에 대응해 핵 공격의 한계를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미사일 사용 승인 후 처음 미국산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로 러시아 영토를 타격한 데 대해 “이는 러시아와 맞선 서방의 전쟁이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이라며 “이제 핵 강대국 간 직접적 무력 충돌 위험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스푸트니크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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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날 선 반응과 대조적으로 미국은 “간신히 하품을 참을 정도” 수준의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미국에서 러시아의 새 핵 교리는 “실체 없는 허무맹랑한” 위협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며 미 행정부의 관심은 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사가 어떻게 될지에 온통 쏠려 있다는 것이다.
NYT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1000일째 이어지는 동안 미국은 ‘핵무기 버튼을 누를 수 있다’는 러시아의 위협에 무뎌졌다고 평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간 확전을 피하고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에 대한 공개적 공격을 조심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핵 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깔려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나토의 재래식·핵 무기 태세가 러시아의 핵 사용을 억제하기에 충분하다고 평기하기도 한다.
미 국방부에서 2년간 파견근무를 하다 복귀한 핵 전문가 비핑 나라 매사추세츠 공대(MIT) 교수는 NYT에 “핵무기 사용은 말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억제 균형과 이해관계에 달려있다”며 “선언적 교리를 변경한다고 해서 미국과 나토, 러시아 간 억제 균형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새 핵 교리가 푸틴 대통령에게 외교적 이점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미국 내 비판 여론을 부추기는 동시에 “내년 1월 취임 전 휴전”을 강조해온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메시지에 힘을 보태면,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의 휴전 협상을 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현재 국면이 국제사회가 1970년 핵확산금지조약(NPT) 발효를 계기로 유지해온 국제비확산체제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러시아의 호전적인 핵 사용 위협이 고조되고, 미국 역시 태도를 바꿔 적극 대응에 나설 경우 핵보유국 사이 ‘공포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러시아와 서방의 일부 관리들은 로이터에 전쟁이 막바지이자 가장 위험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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