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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성공회 최고 성직자 사임…“50년 전 소년 학대 은폐에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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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저스틴 웰비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가 2013년 3월 즉위식에서 손을 하늘로 들고 있다. 캔터베리/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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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최고 성직자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12일(현지시각) 사의를 표명했다. 성공회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로 불리는 ‘존 스미스 학대 은폐 사건’과 관련한 사퇴 요구가 거세진 데 따른 것이다.



웰비 대주교는 성명에서 “사임하는 것이 국교회에 최선의 이익이라고 믿는다”며 “개인적, 제도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모든 학대 피해자와 생존자의 슬픔과 함께한다”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대주교가 교회 최악의 학대 스캔들을 처리한 것에 대한 강한 압박을 받아 사임하기로 결정했다”고 부연했다. 웰비 대주교는 지난 7일까지만 해도 사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여론이 악화하자 이날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변호사이자 자선단체 ‘아이워른 트러스트’를 운영하면서 성공회 내 유력 인사로 자리매김한 존 스미스는 1970년대 말부터 영국과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성공회 캠프에 참여한 13~17살 소년 등 130여명에게 신체적, 성적, 정신적 폭력을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소년들을 창고에 가둬 지팡이로 폭행하고,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기저귀를 차야 할 정도로 잔혹한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성공회는 2013년 피해자 고발로 이 사건을 파악했으면서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지난달 18일 전직 사회복지 책임자인 키스 마킨이 발표한 독립적 보고서는 성공회가 침묵하지 않고 영국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법당국에 이 문제를 제기했더라면 스미스가 재판에 넘겨져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었다고 꼬집었다. 성공회가 “심각한 학대와 범죄를 은폐했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장이다. 이후 스미스는 2018년 77살 나이로 케이프타운에서 세상을 떠났다. 스미스의 학대 사건을 다룬 책 ‘예수를 위한 피흘림’을 쓴 앤드루 그레이스톤은 최소 11명의 주교가 스미스의 학대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막지 못했다며 “이것은 한 사람의 무능함에 관한 것이 아니다. 교회 내 특권에 대한 뿌리 깊은 문화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영국에서는 1만3천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웰비 대주교의 사임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기자들의 관련 질문을 받고 “이번 사건의 혐의는 규모와 내용 면에서 끔찍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전 찰스 국왕은 웰비 대주교의 사임을 승인했다.



웰비 대주교는 이튼스쿨과 케임브리지 대학을 나와 정유업계에서 11년간 일하다가 1993년 성공회 사제로 서품을 받았고, 2013년 8500만명의 신도를 거느린 세계 성공회 수장 105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이름을 올렸다. 잉글랜드 국교인 성공회의 수장은 영국에선 왕실 가족을 제외하고는 의전서열 1순위로 꼽힐 만큼 권위를 가진다.



성공회는 16세기 영국 국왕 헨리 8세가 교황 클레멘트 7세에게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청원했다가 거절당한 뒤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을 선언하면서 설립됐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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