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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기업 날개 꺾는 ‘규제 법안’ 배로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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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5개월간 1345건 발의, 21대 때보다 급증

지난 5월 말 22대 국회가 문을 연 이후 발의된 법안 중 규제 법안이 21대 개원 초기인 4년 전의 배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규제 법안은 규제 조항을 신설하거나, 기존 규제를 강화할 여지가 있는 법안을 말한다. 또 발의 법안 중 규제 법안 비율은 30%에 육박했다.

12일 시민 단체 좋은규제시민포럼이 22대 국회가 문을 연 5월 30일부터 지난달 25일까지 약 5개월 동안 발의된 4503건의 법안을 분석한 결과, 29.9%(1345건)는 규제 법안이었다. 21대 국회 첫 5개월간 발의된 법안4227건 가운데 규제 법안이 14.9%(629건)이었던 것보다 대폭 늘었다. 규제 법안은 대체로 기업 경영권이나 인사권을 제한하거나 면밀한 영향 분석 없이 대중적 인기에 영합한 법안이 많았는데, 이런 법안이 시행되면 기업의 자율 경영을 막으면서 비용은 늘어나게 해서 나아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 자율 위협하는 무분별한 규제

주요 규제 법안을 보면 기업이 자율로 결정해야 할 사항을 법으로 강제하는 등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법안이 많았다.

지난 6월 발의된 ‘채용절차법 일부개정안’은 기업이 인공지능(AI)을 채용에 활용할 때 구직자에게 평가 방식과 인공지능 작동 방법을 알리도록 하고, 정기적으로 전문 기관에 AI 기술 점검을 받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기업은 채용 절차에 대해 조목조목 법으로 정하지 않아도 좋은 인력을 뽑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기업이 자체 판단할 일을 법으로 강제하는 불필요한 규제인 것이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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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시간 외에 카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연락을 법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취지의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도 발의됐다. 기업별 노사 차원에서 해결할 일을 법으로 강제하려 한 대표적 사례다. 휴대전화 보급과 소셜미디어 확산으로 근무시간 외 자주 업무 연락이 오면서 근로자들의 스트레스가 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일과 시간 외에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업무가 이뤄지는 것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는 사회나 직장 내 근무 관행으로 해결할 일이지 법으로 규제를 강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의견이 많다. 또 경우에 따라 직장의 긴급한 연락 등까지도 규제를 한다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남녀고용평등법 일부개정안’은 ‘근로자가 육아 휴직을 신청한 후 3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사업자가 이를 허용한 것으로 본다’는 등의 조항을 담고 있다. 배관표 충남대 국가정책대학원 교수는 “사용자의 경영권이나 인사권을 제약하는 불필요한 규제”라고 말했다.

◇실적 경쟁에 난무하는 규제 입법

이렇게 규제 입법이 난무하는 이유는 의원들의 포퓰리즘과 실적 경쟁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교한 영향 분석은 빠진 채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는 법안들이 빗발치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별로 보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규제 법안 발의 건수가 전체의 63.6%(855건)에 달했다. 이어 국민의힘(32.6%·439건), 조국혁신당(2%·28건), 진보당(1.1%·15건) 등의 순이었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과거에는 무리한 법안에 대해 관련 정부 부처에서 ‘신중 검토’ 의견을 주면 국회에서 이를 상당 부분 수용하는 분위기였다“며 “여야 간 의석수 불균형이 계속되고, 입법 강행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각 의원실의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의원들의 법안 발의 실적 경쟁 때문에 이전 국회 때 발의한 법안을 다시 그대로 발의하는 경우도 많았다.

예를 들어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대, 21대, 22대에 교육환경보호법 일부개정안을 동일한 내용으로 반복해서 발의했다. 학교 근처 200미터 이내에 드라이브 스루의 입지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였는데, 20대에서 22대로 바뀌었지만 이런 규제가 소비자와 사업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없었다.

이혁우 배재대 행정학과 교수는 “20대, 21대 국회에서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된 규제를 또다시 새로운 분석이나 점검 없이 발의하는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과잉 규제 발의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공동 발의자 10명을 만들면 법안 발의가 가능한 현 시스템이 의원실별 실적 경쟁과 맞물려 입법 기관의 책임감을 희석시키는 면이 있다”며 “의원 한 명이 자신의 이름으로 법안을 단독 발의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만든 의원 입법 법안이 나올 수 있게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취지다.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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