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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김필영의 저랑 같이 신문 읽으실래요] [20] 유튜브 ‘20분 영화 요약’ 시대에 신문을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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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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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를 갔다. 그날은 가방에 새로 산 다이어리가 있었다. 2025년 일정을 작성할 생각에 기분이 조금 들떠 새로운 다이어리를 펼쳤다. 첫 장에 2024년을 되돌아보는 페이지가 나왔다. 내 2024년은 어땠을까. 소란스러운 키즈카페에 시간이 멈춘 듯 별다른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무심코 흘려보낸 것 아닌가 싶었다. 2024년이 다 어디론가 가버린 듯했다.

그날 밤 자정이 넘어서야 신문을 펼쳤다. 눈을 사로잡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채식주의자 36초 요약, 영화는 2배속. 짧아서 좋다고?’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36초 만에 요약된다니. 실제로 영상을 찾아봤더니 정말로 36초 만에 채식주의자를 요약하고 있었다. ‘아, 이게 정말 가능하네’라는 생각과 함께 이걸 본 것을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영상을 보고 다시 다이어리를 펼쳤다. 어쩌면 나의 2024년이 ‘36초짜리 채식주의자’처럼 요약된 채 마냥 흘러가지 않았을까. 분명히 매일 살긴 했는데 이걸 내가 깊게 탐독하며 하루하루를 채워 나갔다고 볼 수 있는지 자신이 없었다. 짧은 시간 내에 콘텐츠를 소비하고 나면 유행하는 작품을 누군가가 봤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요약본은 내용과 결말을 알려주는 식으로 정보만 조금 더해줄 뿐이다.

마찬가지로 한 해 동안 내가 능력을 남들에게 증명하려고 열심히 했던 행동들은 다이어리를 빼곡히 채운 일정에 남아 있긴 했다. 이런 건 1년간의 행적을 보여주는 요약본을 만든다고 할 때 담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위해 온전히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한 것은 많지 않았다.

5시간 동안 봐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영상을 20분 요약으로 본다면 그것은 정보가 쌓였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을 온전히 감상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오히려 20분을 낭비한 셈이 아닐까.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가. 아니면 분초 사회에 맞춰서 요약본이나 세 줄 요약, 배속으로 영상을 보는가. 요약본을 본 것과 작품 전체를 본 것은 깊이에서 큰 차이가 난다.

삶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순간이나 상황에서 그것을 나만의 관점으로 해석하지 않고, 마음으로 느끼며 살지 않는다면 내 의지대로 살았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2024년을 되돌아볼 때 당신도 나처럼 시간을 마냥 흘려보낸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라. 온전히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이 얼마나 있었는가. 사람이 자신을 되돌아볼 때 요긴한 도구를 꼽아보라면 단연 신문이다. 신문을 읽는 건 삶을 온전히 느끼고 이해하고 사는지, 요약본을 훑는 듯한 삶을 사는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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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영 작가·글로성장연구소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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