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미래의 자기 아이에게 들려줄 ‘평화그림책’을 만들고 있다. 정애경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애경 | 세계시민교육연구소 대표
“선생님, 여기는 시에라리온입니다. 건강하시죠? 여기서는 여성할례 풍습이 흔하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할례 전통을 존중해야 하는데, 인권에 대한 고민도 생기네요. 교실에서 아이들과 토론했던 문화충돌이 먼 아프리카에서 다시 생각납니다.”
최근 국제개발 협력 활동에 참여하는 제자의 문자를 받고, 학생들과 함께 만들었던 실험적 논술수업이 떠올랐다. ‘마음은 한국에, 눈은 세계로’라는 슬로건 아래 글로벌 리더가 꿈이던 학생들과의 수업이었다. 인구 과잉, 자원 고갈, 기후 위기, 지구 온난화, 인권 침해 등 글로벌 이슈가 담긴 읽기자료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보는 다양한 렌즈가 되어주었다.
학생들에게 글로벌 이슈를 바탕으로 한 논술 수업을 제안한 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장차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학생들이 국가를 넘어 국제사회와 인류의 문제에 책임감을 갖고, 더 큰 운명공동체와 연대의식을 갖기를 바랐다. 국내외 이슈에 대해 질문하고 탐구하는 논술수업을 통해 자기 삶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사회의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자신감과 실천력을 키워주고 싶었다. 이것이 미래를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힘이라고 생각했다.
학생들이 미래의 자기 아이에게 들려줄 ‘평화그림책’을 만들고 있다. 정애경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식 위주의 암기·주입식 학습에 익숙한 학생들은 수업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수업이 진행될수록 학생들은 교사의 설명을 일방적으로 듣는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 교과서의 이론과 지식을 활용해 토론하고 문제를 찾아 분석하는 확장된 사고를 보여주었다.
국제개발부터 인권, 평화, 문화다양성, 환경생태계 등 다양한 주제로 진행한 논술 수업은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고 소통하는 훈련을 전제로 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를 모아 적절한 결과물(프로토타입)로 직접 만들어 보는 과정은 실질적인 성취감으로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을 한 편의 칼럼으로 완성할 때마다 학생들은 자신의 교실을 ‘생각제작소’라고 불렀다. 학생들은 이런 학습과정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아시아 전래동화를 일러스트한 ‘ASTORY’는 문화다양성 존중을 일깨웠고, 좋은 개발을 주제로 한 ‘아시아 오지마을 다리 만들기’를 통한 다리 건설 학습은 국제개발과 교류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었다. ‘바나나 국제가격 배분게임’은 갈등과 협상 과정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국제경제 시스템을 배우며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의지와 능력을 키워주었다.
시에라리온에서 SOS를 보낸 제자는 이러한 수업을 통해 인권과 문화 존중을 경험했다. 여성 할례는 이슬람 문화권 지역인 남미, 아프리카, 중동지역에서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종교적·문화적 관습을 이유로 여성 생식기 일부를 잘라 손상시키는 행위다.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진행되므로 평생 합병증으로 인한 고통을 받기도 하며 심하면 사망하기도 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여성 인권 유린 사례로 꼽힌다. 이에 유엔이 여성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매년 2월6일을 세계 여성할례 금지의 날로 정하고 근절에 힘쓰고 있다.
그 제자가 시에라리온의 여성할례 풍습을 문화다양성 측면에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인권침해 문제를 고민했던 건 글로벌 이슈를 주제로 토론하고 글을 썼던 수업의 경험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제자의 문자를 계기로 인류보편적 가치인 세계 평화, 인권, 문화다양성 등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세계시민 교육의 필요성을 더 깊이 절감했다.
학생들이 미래의 자기 아이에게 들려줄 ‘평화그림책’을 만들어 교실에 전시하고 서로 돌려보고 있다. 정애경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학생들과 했던 세계시민 교육의 여러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미래의 자기 아이에게 전해줄 ‘평화 그림책’ 만들기 수업이었다. 자신의 아이가 만날 미래의 세상을 상상하고, 부모로서 평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편지로 써서 발표했다. 학생들은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자녀세대를 위해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지금 이 학생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세계시민으로 잘 살아가고자 고민하고 탐구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앞으로도 미래세대에게 힘과 희망을 주는 교육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가장 핫한 뉴스, 빠르게 확인하세요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