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미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후 한미 증시 간 간극은 더욱 벌어지는 양상이다. ‘법인세 감면’을 내세운 트럼프 2기에 대한 기대감 등으로 미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는 반면, 서울 증시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지칭되는 저평가 이슈가 해소되지 않은 데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 무역 기조가 한국 경제에 악재가 될 것이란 불안감이 확산되며 개인 투자자들은 미 대선 후 3거래일 동안 3500억원어치의 한국 주식을 팔았다.
지난 8월 초 ‘블랙 먼데이’로 불린 아시아 증시 대폭락 이후 서울 증시는 남들 오를 땐 못 오르고, 떨어질 땐 더 내리면서 회복력 측면에서도 세계 꼴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G20 국가 중 주가가 블랙 먼데이 이전보다 낮은 나라는 한국 외에 전쟁 중인 러시아, 물가 상승률이 50%를 웃도는 튀르키예뿐이다. 금융투자 소득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증시 발목을 잡는다는 해석이 많았지만, 민주당이 ‘금투세 폐지’로 돌아선 후에도 서울 증시는 부진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2위 SK하이닉스는 고대역 메모리(HBM)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순이익이 3위 미국 마이크론보다 3배 많은데도, 시가 총액은 마이크론에 훨씬 못 미친다. 삼성전자는 3분기 중 9조원대 이익을 냈는데도, 외국인이 12조원어치나 투매하는 바람에 주가가 5만원대로 폭락했다. 선진국으로 분류된 23국 증시의 상장기업 시가총액을 기업 보유 자산으로 나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3.2인데, 한국 증시의 PBR은 1도 안 된다. 그만큼 저평가돼 있다는 뜻이다.
주가는 기업의 수익성, 성장성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하지만, 증시의 매력도도 중요하다. 세계 꼴찌 수준의 주주 환원, 쪼개기 상장 등 소액 주주를 홀대하는 지배구조 문제, 공매도 전면 금지처럼 글로벌 기준과 동떨어진 제도와 관행이 투자자를 한국 증시에서 떠나게 하고 있다. 정부가 ‘증시 밸류업’을 추진 중이고,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증시 선진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만큼 정부와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증시 매력도를 높일 수 있는 제도 개혁을 이루어 내야 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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