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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민사소송법·집행법 대가 이시윤 전 감사원장 별세…초대 헌재 기틀 마련 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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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회 법사위에 출석한 이시윤 전 감사원장. 경향신문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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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법과 민사집행법 분야 대가로 꼽히는 이시윤 전 감사원장이 9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초대 헌법재판관을 지냈으며 헌재의 이론적 기틀을 세웠다는 평가도 받는다.

고인은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8년 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해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민사·형사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일했으며 춘천지법원장과 수원지법원장을 지냈다. 서울대에서 6년간 교수로도 일했다.

1982년에 쓴 <민사소송법>(이후 <신민사소송법>으로 개칭) 교과서는 민사소송법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사법고시 수험생들에게 ‘바이블’로 통했으며 학계는 물론 실무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고인은 독일 민사소송법 이론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함으로써 민사소송법의 ‘탈일본화’에 기여했다.

고인은 이일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1988년 초대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고인은 헌재 설립 초기 헌법재판관으로 일하면서 헌재의 이론적 기틀을 다졌다. 조규광 초대 헌재소장을 설득해 독일 헌법재판 제도를 국내에 도입하는데 기여했다. 그는 헌법 재판도 민사소송과 같은 가처분이 가능하다며 이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이 제도는 훗날 도입돼 현재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이범준 전 경향신문 기자가 쓴 책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2009)>를 보면 ‘한정 합헌’ 등 헌재의 각종 결정 양식이 고인의 제안으로 시작돼 자리를 잡았다. 공권력을 문제 삼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 역시 고인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졌다. 고인은 검찰의 불기소 또한 헌법소원 대상으로 삼기 위한 논리적 근거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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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윤 당시 감사원장(오른쪽)이 1996년 10일 국회법사위의 감사원 국감에서 관계자로부터 답변내용과 관련한 보고를 받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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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1993년 12월16일 헌법재판관 임기를 9개월 남기고 이회창 당시 감사원장의 후임으로 김영삼 정부 2대 감사원장에 발탁됐다.

고인은 학계에서는 한국민사법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민사소송법학회와 한국민사집행법학회를 만들어 초대 회장직을 맡았다. 주요 저서로는 <신민사소송법>외에도 <민사집행법>, <판례해설 민사소송법>, <민사소송입문> 등이 있다.

고인은 민사법학회 회장 시절 법무부 민법개정위원장을 맡아 시대 흐름과 변화를 고려한 민법의 전면 개정을 위해 힘썼다. 그 결과 재산 분할 등 가족법 개정과 유류분 변화 등 부분적 개편은 있었지만 전면 개정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는데, 현재 양창수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아 전면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고인은 말년까지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지난달까지도 <신민사소송법>의 개정판 저술 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책은 개정 18판이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

빈소는 신촌세브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장지는 안산시 선영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광득·항득씨 등이 있다.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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