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동부 시각으로 11월 6일 오전 2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플로리다에 위치한 웨스트팜 비치 별장에서 승리를 선언하며 웃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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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 2기를 맞게 됐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상·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모두 승리했다. 행정부뿐 아니라 상·하원까지 모두 장악, 사실상 트럼프 세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4년간 최강대국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안보·경제 지형까지 그의 손에 좌우되게 됐다.
트럼프 집권 1기는 일방적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 돌발 행동으로 인한 충격의 연속이었다. 트럼프는 중국과 무역 전쟁을 선언하고 주변국에도 끊임없이 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동맹국들엔 수시로 안보의 대가를 내라고 요구했다. 두 번째 임기도 그대로일 것이다. 미국과 경제·안보적으로 동맹을 맺어온 우리로선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지금 우리는 미·중 무역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 여파로 제1 수출 시장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2기의 보호 무역 강화는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다. 지난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445억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일본·베트남보다는 작지만 한국도 트럼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기본 관세 10~20%를 물리고, 중국산에는 최고 60% 고율 관세를 공언했다. 미·중 간 관세 전쟁이 벌어지면 한국이 중국과 미국에 수출하는 중간재 수출까지 줄 수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미·중 관세 전쟁이 벌어질 경우 수출이 최대 448억달러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나라 총수출의 7%에 해당한다. 수출이 이 정도 타격을 받으면 국내총생산(GDP)도 0.4% 안팎이 줄 수 있다고 한다.
트럼프는 또 미국 내 반도체·전기차·배터리 공장을 짓는 외국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 반도체·배터리 업체들은 미국이 보조금을 약속해 미국에 공장을 지었는데 트럼프가 보조금을 없애면 사기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내 기업들이 받을 보조금은 12조원이 넘는다. 트럼프가 공약대로 미국 외 지역에서 생산된 차량에 100% 관세를 부과할 경우 자동차 업체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국내 자동차 수출 중 미국 비율은 50%에 이른다.
우선 대미 무역 구조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트럼프가 석유·가스 산업을 키우겠다고 밝힌 만큼, 미국산 원유·천연가스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트럼프가 국가 전략 산업의 대중 수출 전면 통제를 공언한 점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반도체 분야 등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 시간을 벌어주고, 장기적으로 우리 산업 경쟁력과 수출을 늘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대외 정책은 미국의 안보 지원에 대해 돈을 내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가 동맹국을 바라보는 기준은 가치가 아니라 돈이다. 그런데 내라는 돈의 규모가 너무 일방적이다. 그는 입버릇처럼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 부르면서 “100억달러는 내야 한다”고 했다. 방위비 분담금을 9배 인상하라는 것이었다. 트럼프를 제외한 미국 관계자 거의 모두는 한국이 합리적인 주한 미군 주둔비 분담금을 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트럼프에겐 통하지 않는다. 취임하면 곧바로 이 문제부터 꺼낼 것이다.
우리가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지 않으면 미군 감축 카드를 커낼 가능성이 크다. 집권 1기 때 실제로 ‘주한 미군 철수’를 얘기했고 측근들이 “두 번째 임기 우선순위로 하자”고 겨우 말렸다. 주한 미군 철수 카드에 어떻게 대응할지 큰 숙제가 던져졌다. 한·미·일 간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바이든 행정부의 캠프 데이비드 선언 또한 종잇장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과 친분을 과시하며 “핵 가진 지도자와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다. 취임 후 언젠가는 김정은과 마주 앉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은 지금 러시아 파병의 대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군사위성, 핵잠수함 등 첨단 군사 기술을 러시아에서 이전받으려 하고 있다. 트럼프가 이런 김정은과 어떤 타협을 할지 우리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는 ‘미·북 정상회담 쇼’를 통해 미 본토를 노리는 북 ICBM 폐기와 핵 동결 조치로 미국이 안전해졌다고 포장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민 안보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다. 김정은은 이를 노리고 그와 ‘밀당’을 할 것이다. 이러면 우리는 이름뿐인 미국의 핵우산만을 갖고 북핵과 맞서야 한다. ‘이익을 주고받는(give & take)’ 트럼프 식 거래 외교를 역으로 활용하는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트럼프가 주한 미군 철수를 앞세워 비상식적인 방위비 인상을 요구한다면 거꾸로 그 대가로 한국 독자 핵무장 등을 요구할 수 있다.
트럼프가 내년 1월 백악관에 입성하면 윤석열 정부는 앞으로 2년여간 그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개성이 강하고 칭찬을 좋아하는 트럼프 같은 지도자와는 개인적 관계가 중요하다. 아베 전 일본 총리는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금 장식 된 골프 드라이버를 선물하고 트럼프를 극진히 대접했다. 윤 대통령이 그런 관계를 만든다면 김정은과 위험한 거래나 주한 미군 철수, 한국에 대한 무역 제재와 불이익 같은 일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안보 정책 전반을 면밀히 파악하고 사안마다 대책을 미리 세워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트럼프 재집권으로 인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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