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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조용헌 살롱] [1475] 권력과 法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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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른바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 씨가 지난 19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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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을 20년 쓰면서 필화 사건은 없었지만 소동을 일으킨 칼럼은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손바닥에 ‘王’ 자를 쓴 도사가 다름 아닌 ‘J’라는 사람이었다고 썼던 칼럼이었다. J는 전성배(64). 건진법사(乾津法師)의 본명이 전성배였다. 이 칼럼 이후 윤석열 캠프에서 건진법사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건진의 밥줄(?)을 끊은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대원군때 장자방 역할을 했던 도사 백운학도 결국 암살되었다. 반대파였던 민비 쪽에서 보낸 자객에게 죽었다. 함양 서상면 출신의 박 도사(1935~2000). 이후락·윤필용과 친했기 때문에 윤필용 사건의 와중에서 반대파의 공격을 받았다. 보안대 지하실로 끌려가서 ‘너 임마! 도사라면서! 너는 오늘 죽었다’ 소리를 들으며 요원으로부터 흠씬 맞았다. 한때 대권 주자로 거론되었던 포철 박태준. 그가 헬기를 타고 서상면으로 박 도사를 찾아오는 성의를 보이는 바람에 김영삼 정권 때 박 도사도 고초를 겪었다.

권력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여차하면 감옥이고 죽음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는 예지력이 있는 왕사나 국사를 모셨다. 왕사가 없는 시대에는 무당, 법사, 도사, 술사를 끼고 산다. 여차하면 무당은 바로 버린다.

건진은 가방끈이 짧다. 법사가 되려면 가방끈이 짧고 밑바닥 계층이어야 한다. 학벌이 좋으면 영발이 쇠퇴한다. 이미 10대 중반에 접신이 되었으니 학교도 못 다녔다. 건진의 어머니도 충주 일대에서 유명한 샤먼이었는데 아침마다 ‘오늘 오후에 누구 올 것이다!’라고 예측하면 거의 들어맞았다고 한다.

건진은 접신된 귀신이 13가지나 되었다고 한다. 다른 무당은 1~2개 정도 들어왔는데 건진은 13개나 되었으니 그 구질이 다양하였다. 5공화국 때는 전두환 정권의 실세들이 건진을 만나려고 쫓아다니기도 했다. 건진의 또 한 가지 주특기는 치병에 관한 부분이었다. 내가 아는 지인이 사업하다 부도나서 감옥에 3년 있었는데 감방에서 몸이 차가워지는 냉병이 왔었다고 한다. 건진은 인체의 숨어 있는 잠맥(潛脈)을 잡아내기도 하였다. 건진에게 비판적인 필자에게 그 지인은 건진 때문에 냉병이 나았다고 여러번 강변하였다. 건진은 원주 치악산에서 산신 기도를 하다가 간첩 신고를 당하기도 했고, 이번엔 검찰에 체포되는 신세가 됐다. 술사는 매일 바쁘고 이권을 챙기다가 거미줄에 걸린다. 도인은 한가하게 끽다거(喫茶去)나 하고 그럭저럭 사는 것이다.

권력 핵심에 법사가 너무 가까이 가면 뒤끝이 좋지 않다는 게 역사적인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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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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