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 맞은 미국은 지금
봉쇄·차단·검문… 긴장감 높아지는 워싱턴 DC - 47대 미국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4일, 비밀경호국의 한 요원이 워싱턴 DC 백악관 근처에 설치된 보안 출입문을 닫아 걸고 있다. 일부 지지자가 선거 결과에 불복해 의회나 백악관에서 폭동을 벌일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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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걱정과 두려움이 크다. 그저 별 탈 없이 선거가 빠르게, 민주적으로, 평화롭게 마무리됐으면 좋겠다.”
미국 대선을 하루 앞둔 4일 워싱턴 DC 백악관 근처의 한 대형 편의점 직원이 말했다. 평소에도 생필품을 훔쳐 가는 좀도둑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가게는 약 50m에 달하는 1층 전면부를 합판으로 꼼꼼히 틀어막아 요새 같은 모습이었다. 대선 이후 있을지 모를 시위와 약탈·폭동에 대비해 마련한 고육지책이다. 근처 프랭클린 공원 일대 건물 1층에 입점한 음식점들도 대형 가림막을 둘러쳐 겉에선 영업 중인지 공사 중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한 자영업자는 “이것 때문에 점심 매출이 바닥을 쳤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볼지 모른다”고 했다.
민주당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역대급’ 접전을 벌인 가운데, 선거를 하루 앞둔 미국의 수도는 긴장감이 고조된 모습이었다. 이날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은 보행자 통행이 아예 통제됐고, 광장 주변엔 높이 약 2.5m의 검은색 철제 펜스가 설치됐다. 이곳엔 이미 보안을 위한 콘크리트 바리케이드 등이 설치돼 있었으니 이중·삼중으로 방벽이 만들어진 셈이다. 가슴에 ‘비밀경호국(SS)’ 문구가 박힌 방탄복 차림의 요원들이 긴장된 얼굴로 거리를 순찰했다.
미국 대선을 하루 앞둔 4일 워싱턴 DC 백악관 근처 한 상업용 건물에서 관리자들이 건물과 주차장 입구에 철제 펜스를 설치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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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길 건너에 있는 한 업무용 빌딩에선 관리자들이 성인 남성 키보다 높은 철제 펜스를 지하 주차장 입구에 설치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건물 관리인 셰이퍼씨는 “건물 이용자들이 유사시 대피 절차에 숙달될 수 있도록 연습하라는 당국의 문자메시지까지 받았다”며 “그야말로 전운이 감도는 상태”라고 했다. 업무용 건물 150여 곳에 경비 인력을 파견하는 어드마이럴 시큐리티 서비스는 언론에 “백악관과 의회 의사당 주변 고객 시설에서 교대 근무를 할 인력 2000여 명이 준비된 상태”라고 했다. 시 당국도 휴가 신청까지 반려해 가며 경찰 3300여 명을 거리 곳곳에 배치했다. 2021년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이 대선 패배에 불복해 의회를 습격한 ‘1·6 사태’의 트라우마가 있는 의사당 일대에도 철제 펜스가 설치됐다. 해리스의 모교이자 그가 선거 당일 개표 방송을 시청할 것으로 알려진 하워드대 주변은 저녁부터 도로 교통이 전면 통제됐다.
유례가 없는 박빙의 구도에서 정치 양극화가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올해도 4년 전과 같은 불복·폭력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소셜미디어에 범람하는 각종 거짓 정보가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거 하루 전인 4일에도 X(옛 트위터)에서 CNN 뉴스 형식으로 “해리스가 텍사스에서 트럼프에게 앞선다”고 적은 가짜 이미지가 퍼져 1000만회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인프라보안국(CISA)의 젠 이스터리 국장은 “올해 대선에서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허위 정보가 퍼지고 있다”며 “적대 국가들이 과거보다 거짓 정보를 증폭하고 있고, 미국인은 엄청난 양의 허위 정보에 노출돼 있다”고 했다.
대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극단 분자들이 선거 후 폭동을 모의한 정황도 나왔다.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용자 50만명이 넘는 텔레그램 채널 50개의 메시지 약 100만건을 분석한 결과 트럼프 극렬 지지 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스 회원들이 ‘내전(內戰)에 대비한 총기 준비’ ‘부정 투표에 가담한 이주민·선거관리인 사살’ 같은 극단적 대화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프라우드 보이스의 일부 회원은 1·6 의회 습격 사태 때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은 “소수의 생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면서 “선거 후에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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