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추락’에 제동 건 대법
10여 년간 교사로 근무해온 A씨가 아동 학대 가해자로 몰린 건 2019년 3월 14일이었다. 당시 상황은 이랬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2학년 담임 교사였던 A씨는 오전에 반 학생들을 조별로 나눠 모둠 대표가 나와서 발표하는 수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발표자로 뽑힌 한 여학생이 토라져서 발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이어진 병원 놀이와 율동 수업에도 그 여학생은 참여하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점심 시간이 되자 A씨는 아이들을 급식실로 인솔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A씨가 “야, 일어나” 하며 아이의 손목을 잡아당겼지만, 아이는 의자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A씨는 그 자리에서 학부모에게 전화해 “애가 고집을 피우며 버티는데 다칠까 봐 더 힘을 쓸 수가 없다”고 했고, 학부모 동의하에 아이를 교실에 두고 다른 학생들만 급식실로 데리고 갔다.
◇”교실 안 소란이 법정으로... 형사처벌할 문제냐”
점심 직후 여학생 학부모가 찾아와 “아이를 잡아당겨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애가 손목을 다쳤다”며 항의했다. 수업 때 상황을 설명했지만, 학부모는 A씨를 아동 학대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A씨는 “경찰은 ‘아이에게 소리치고 다치게 한 거 맞지 않냐’며 유도성 질문만 했다. 귀찮아서 빨리 처리하려는 것 같았다”고 했다. 검찰은 2019년 11월 A씨의 행위가 신체적 학대라며 약식기소했다.
그래픽=이철원 |
A씨의 불복으로 사건은 정식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학대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선생님이 내동댕이치지 않았다”는 아이들 증언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1·2심은 아이를 내동댕이친 부분은 무죄로 판단하면서도, 손목을 잡아 끈 혐의는 인정된다며 벌금 100만원과 40시간의 아동 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을 선고했다. 2심은 “대화 등 다른 수단으로는 훈육이 불가능해 물리력으로 지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고도 했다. 이 사건으로 A씨는 교육청에서 견책 징계도 받았다.
판결에 대해 법조계에선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교실 내 소란을 다스리려고 신체 접촉을 한 것을 학대죄로 기소하고 처벌하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5년 만에 혐의 벗은 교사 “허무하다”
A씨는 기소된 지 5년 만에 혐의를 벗었다. 대법원은 “A씨는 구두 지시만으로는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해 합리적 재량 범위 내에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지도 방법’을 택했다”며 “교육 활동 참여를 독려한다는 목적에서 이뤄진 지도 행위”라고 했다. 이어 “학교교육에서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은 존중돼야 한다”며 “A씨가 피해 아동을 체벌하거나 신체적 고통을 가할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조치가 초중등교육법 등에 따라 금지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A씨는 수사받을 때 두 달간 짧게 병가를 낸 것 외에는 계속 교단에 섰다. A씨는 “주변에서는 학부모 측과 합의하고 끝내는 게 낫지 않겠냐고도 했지만, 내게는 교사로서 명예가 달린 일이었다. 명예가 망가진 채 학교 생활을 할 수는 없었다”면서 “이번 판결이 앞으로 교사들에게 힘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교권 보호하는 판결들... “교원 전문성 존중해야”
학생을 가르치다 학대 혐의로 기소되는 교사가 많지만, 다행히 교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도 속속 나오고 있다. 작년 9월 대법원은 수업 시간에 떠든 아이에게 벌점으로 ‘레드 카드’를 주고 청소를 시킨 교사를, 학부모가 계속 교체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교권 침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부모가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나,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떠드는 학생들을 야단친 40대 초등학교 교사 B씨도 아동 학대 혐의로 기소됐다가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B씨는 떠든 학생들을 교실 앞으로 불러내 공개적으로 혼내거나, 교실 청소를 시켰다고 한다. 검찰은 정서적 학대라며 기소했다. 그러나 1·2심은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의 상고 포기로 무죄가 확정됐다. 올해 1월 대법원은 수업 중 교사의 음성을 몰래 녹음한 것은 아동 학대 사건의 증거로 쓸 수 없다는 판결도 내렸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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