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4분44초' /롯데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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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단도직입적으로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영화, 안 무섭습니다. 기획 단계에서 보여준 재치와 재미를 정작 본작에서 전혀 살리지 못 했어요. 앞서 레터에서 말씀드린 대로 비추 영화는 기사로든 레터로든 가능한한 두 번은 보고 쓰는 게 원칙이라 ‘4분44초’도 두 번 봤습니다. 개봉날인 1일 금요일 오후 3시, 이튿날인 2일 토요일 오후 10시30분 회차였는데요, 개봉날엔 제 앞줄이 거의 채워졌던데 둘째날엔 주말인데도 150석 상영관에 저 빼곤 커플로 추정되는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4분44초’는 ‘매일 새벽 4시44분, 입주민과 방문객이 연이어 실종되는 북촌아파트의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체를 담은 공포 이야기’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왜 사라지느냐, 딴 이유 없어요. 귀신이 나타나서 잡아먹거든요. 안 잡아먹을 땐 합체하고요. 8편 에피소드의 골격은 거의 비슷합니다. ‘4시44분이 된다, 불이 껐다 켜진다, 으악! 귀신이다, 으악! 귀신이 달려든다, 으악! 끝.’ 설마 그렇겠냐고요, 정말입니다.
8편은 모두 4호 라인에서 벌어집니다. 1편에선 204호 주민이 ASMR을 듣다가 변을 당하는데, 제작진이 여기에서 회심의 한 수를 던집니다. 의문의 괴한이 ‘네가 죽더라도 왜냐고 묻지마, 그분이 그렇게 정한거야’라고 친절하게 말해주거든요. 개연성은 따지지 말고 그냥 펼쳐지는 공포를 받아들이라는 거죠. 오호라, 얼마나 무서운 걸 준비했으면 이런 도전장을. 뭔가 보여줄 자신이 있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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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후 전개를 보니 ‘4분44초’ 제작진은 스스로 던진 도전장이 얼마나 큰 목표치인지 미처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개연성 없이 밀고 나가려면 시각과 청각만으로 공포와 긴장의 수위를 최고치로 끌고 가야합니다. 쉽게 말해, 이유 없이 죽어나가고 이유없이 무서우려면 정말 무서워야한다는 거죠. 특히 공포의 리듬이 중요해집니다. 조일 듯 풀어줄 듯 관객을 오싹하게 급습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4분44초’는 그럴 생각이 애초에 있었나 싶게 내내 느긋하고 느슨합니다. 2편에선 804호 주민이 택배왔다는 소리에 문을 열어줬다가 그 즉시 택배 든 남자의 흉기에 찔려 죽는데요, 정말 그렇게 죽고 끝이에요. 아, 물론 나중에 시신으로 침대에 누워있다가 여차저차해서 올라온 아랫층 704호 주민을 놀라게 하는 역할을 하긴 합니다만, 그 시신마저 그다지 안 무서워 보이더군요.
에피소드별로 짧게 끊고 가지만, 전체 44분이면 단편영화로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이야기든 재미든 주제든 컨셉이든 가진 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죠. 숏폼 콘텐츠로 먼저 성공한 ‘밤낚시’는 13분으로도 능히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4분44초’는 4분44초 안에 등장인물을 죽이는데만 골몰하고 정작 근본적인 공포를 엮어내지 못 했습니다. 감각적인 면에서도 실망스러워요. 중간에 귀신 나올 땐 저 옛날옛날 ‘전설의 고향’인 줄 알았습니다. 웅크렸던 검은 그림자가 고개를 훽 돌려 쳐다보는데 빨간 눈에 입가 핏자국. 용인 민속촌 알바 귀신도 이것보단 무서울 것 같습니다. ‘전설의 고향’ 귀신은 구비구비 서린 한에 구슬픈 사연이라도 있었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공포를 받아들이라고 했으면 분장이라도 좀 무섭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영화 '4분44초' /롯데엔터테인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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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44초’도 그렇고 최근 ‘안 무서운 공포영화’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맥락없이 수시로 자꾸 불을 껐다 켜요. 껌뻑껌뻑 번쩍번쩍 전등을 온오프하고, 배우는 그에 맞춰 비명을 지르는데, 그럴수록 심드렁해지는 역효과가 강력합니다. 또 하나, 정육점 조명입니다. 어두컴컴한 실내를 어김없이 붉은 조명으로 쏴요. 그렇게하면 보기만 해도 오싹해진다고 생각한 걸까요. 관객의 4000원에 값할 다른 아이디어는 없었던 건지. 배급사는 4000원이 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13분 ‘밤낚시’처럼 다른 영화 보고 부록처럼 볼 수 있는 길이도 아니고, 상품으로 봤을 때 상당히 애매한 길이, 어지중간한 가격입니다. 오며가며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관객 입장에선 4000원이라도 기회비용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죠.
‘4분44초’는 신선한 기획에 걸맞는 콘텐츠를 담아내진 못 했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시도라는 점엔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남이 안 하던 걸 하려고 해야 영화든 세상이든 발전하는 거니까요. 다음엔 기획도 좋고 내용도 뛰어난 영화로 관객을 놀라게 해주시리라 믿으며.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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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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