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폐디스토마 예방 내세워 민물 게 금지한 총독부...주인공 최멍텅의 항변
총독부는 1924년 폐디스토마를 예방한다며 민물게 채취, 판매를 금지했다. 민물게장을 별미로 즐기던 조선인들은 반발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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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 정치는 차별정치라더니 게장도 맛있는 것이라고 일본 사람한테만 파는 가보다.’
한량 최멍텅은 기생 옥매가 ‘만남 조건’으로 내건 민물게장을 구하러 나서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경성의 유명 식당 ‘장춘관’에 갔지만 종업원은 “지금 민물게장을 어디서 찾느냐”며 경찰서나 ‘동(東)8호실’에 가보라고 핀잔을 준다. 총독부병원 동8호실은 정신병동이 있던 곳이다. 정신병자 취급을 한 셈이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총독부는 1924년 폐디스토마 예방을 위해 민물 게 채집을 금지했다. 폐디스토마(폐흡충)는 민물게나 가재의 기생충 유충이 폐에 침입해 일으키는 병이다.
총독부가 금지한 민물 게장을 구하러 경찰서에 찾아갔다가 경을 치는 주인공 최멍텅. 1924년 11월5일자 멍텅구리 헛물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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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병 둘러메고 게잡이 나서
100년 전 조선일보 네컷 연재만화 ‘멍텅구리’는 최멍텅의 민물 게장 쇼핑(https://archive.chosun.com/cartoon/mtguri/mt2_content_wide.jsp?tid=mt110022001&tno=A)을 다룬다. 근대적 위생을 내세워 단속하는 총독부와 민물 게장을 즐겨먹던 조선인의 관습이 충돌하는 장면이다. 최멍텅은 종업원 말만 듣고 경찰서로 찾아가 ‘게장 내놓으라’고 생떼를 쓴다.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며 사무실안으로 뛰어들어가자 경찰이 따귀를 올려붙인다. 혼쭐난 최멍텅은 하는 수없이 간장병을 둘러메고 직접 민물 게를 잡겠다며 파주 장단행 기차를 탄다. 100년 전에도 민물 게가 많이 잡혀 게장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근대적 위생과 관습의 충돌
최멍텅은 어찌어찌 게를 잡아 실로 묶어뒀지만, 게는 도망가버리고 또 다시 낭패다. 하릴없는 한량의 수작같지만, 식민 당국과 피지배자인 조선인 간의 복잡한 심사와 갈등이 담겨있다. 당시 신문엔 경찰서에서 폐디스토마를 예방하기 위해 게의 채취, 판매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때는 벌금을 물린다(‘蟹채취금지,지스도마 예방키위해’, 조선일보 1924년6월4일)는 기사가 실렸다. 1924년 11월 경기도 위생과 조사에 따르면, 관내 폐디스토마(土疾·토질) 환자1397명 중 장단군이 1021명으로 제일 많고 다음은 파주, 강화순이었다.(‘경기토질환자 약 1400여명, 게많은 장단이 제일’, 조선일보 1924년11월27일)
위생만 따지면, 민물게 채취 금지는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 조치였다. 하지만 즐겨먹던 별미 ‘민물 게장’을 못먹게된 조선인들은 이를 금지한 총독부 권력에 불만이었다. 강요된 위생과 전래의 관습이 부딪치는 장면을 만화는 예리하게 포착했다.
◇ ‘멍텅구리’ 744편 모두 조선닷컴 공개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4년 10월13일 탄생한 국내 신문 최초의 네컷 연재만화 ‘멍텅구리’는 독립운동가 신석우가 1924년 9월 조선일보를 인수해 이상재 사장을 추대하며 야심차게 내놓은 ‘혁신 조선일보’의 기획이다. ‘멍텅구리’는 충청도 부농 아들인 키다리 최멍텅과 그 친구인 땅딸보 윤바람이 평양 출신 기생 신옥매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에피소드가 중심이다. 당초 기생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오락만화’정도로 알려졌으나 총독부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강하게 비판하거나 서양 문물을 소개하는 시사만화 성격도 갖췄다. ‘한국 만화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란 평가를 받은 이유다.
‘멍텅구리’는 1924년 10월13일 시작, 1927년 8월20일까지 연재됐고, 1933년2월 26일 재등장, 그해 8월2일까지 연재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만화는 ‘헛물켜기’ ‘연애생활’ ‘자작자급’ ‘가정생활’, ‘세계일주, ‘꺼떡대기’, ‘가난사리(살이)’, ‘사회사업’, ‘학창생활’, ‘또나왔소’ ‘모던 생활’ ‘기자생활’ 등 시리즈 12편이다. 조선닷컴은 지난 10월 11일부터 네컷만화 ‘멍텅구리’ 전편(744편)을 공개했다.
<멍텅구리 만화 보러가기 https://archive.chosun.com/cartoon/toon_comics.html>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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