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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서초구 新高價 말고 서울 전체 중위값에 집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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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김경민의 부트캠프]

착시 부르는 ‘앵커링 효과’… 부동산 시장 왜곡 말아야

조선일보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들. 올해 3분기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값은 10억원이지만 강남구만 보면 24억원, 노원구만 보면 5억9000만원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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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초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 전용면적 84㎡(33평형)의 가격이 60억원을 찍으며 신고가를 달성했다는 뉴스가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그 아파트의 동일 평형은 올 6월 49억8000만원에 도달한 후, 7월 55억원 그리고 불과 두 달 후 60억원에 거래됐다. 3개월 만에 10억원이 오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어봤을 독자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2024년 3분기에 거래된 서울시 아파트들의 중위값을 알고 있는가?” 만약 그 수치를 모른다면, 부동산시장의 정보 전달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부동산 시장 참여자에게는 시장의 평균치 주택가격에 대한 정보가 더 광범위하게 전달돼야 함에도, 아주 극소수만 매입할 수 있는(LTV 50%라 가정하면 현찰로 30억원이 있어야 한다) 초고가 아파트 가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험경제학에서 말하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와 연결되며, 그 부작용이 부동산 시장에 나타날 수 있다. 앵커링 효과는 경제학에서 인지적 편향을 만드는 요인의 하나다. 사람들이 특정 숫자나 정보에 노출되면 그 숫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을 가리키는데, 초기에 제시된 정보(앵커)가 이후 의사결정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실험 참여자들에게 “이 나무 높이가 100m 이상인가요?”라고 질문한 후 “이 나무의 실제 높이는 얼마일까요?” 묻는 경우, 100m라는 숫자에 앵커링이 돼 실제 높이보다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질문을 약간 바꾸어 “이 나무 높이는 30m 이상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위 질문의 답보다 낮은 수치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50억 아파트가 55억이 되고 다시 60억이 되는 정보를 더 많이 접한다면, 우리는 “33평 아파트 60억원”이라는 액수에 앵커링이 될 수 있다. 그럼 두 가지 측면에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매우 높은 가격 자체에 대한 앵커링 효과다. 50억원대 이상의 아파트 가격이 자주 언급되면, 대중은 자연스럽게 ‘아파트 가격은 이 정도가 당연하다’는 잘못된 기준을 가질 수 있다. 강남과 같은 부유층이 거주하는 특정 지역의 초고가 아파트 가격이 마치 전체 시장을 대변하는 것처럼 인식한다. 그러나 이런 가격은 전체 시장에서 매우 소수의 거래에 불과하며, 다수의 주택 시장 실태와는 거리가 멀다.

대다수 실수요자가 접근 가능한 아파트 가격대는 훨씬 낮음에도 불구하고, 초고가 아파트의 가격 상승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면 사람들은 ‘서울 아파트는 모두 비싸다’는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해 주택 구입을 고려 중인 사람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기대감을 가지게 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합리적 가격 범위조차 과소평가하게 될 수 있다.

두 번째, 가격의 절대적 상승치에 대한 앵커링 효과도 큰 문제를 야기한다. 55억원에서 60억원으로 무려 5억원이 올랐다는 기사는 해당 아파트값이 매우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5억원이라는 숫자가 전체 시장에서 가지는 의미다. 50억원대 이상의 초고가 아파트에서 5억원의 가격 상승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율의 상승일 수 있지만, 이 절대적인 금액이 크게 부각되면 사람들은 ‘집값이 단기간에 크게 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중저가 아파트가 5억원에서 6억원으로 1억원 상승하는 것(20% 폭등)이 비율적으로 더 큰 변동일 수 있지만, 초고가 아파트의 거래가 중점적으로 보도되면 그 중요한 맥락이 무시된다.

이러한 앵커링 효과는 집을 구입하려는 실수요자나 투자자들에게 과도한 불안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킬 수 있다. 초고가 아파트 가격 변동은 전체 시장을 대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집중 보도로 시장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으며, 주택 구입을 앞당기거나 비합리적 결정을 유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앵커링 효과는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시장을 비정상적으로 과열시키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위값 같은 더 균형 잡힌 지표를 기반으로 부동산 시장을 분석하고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중위값을 부동산 시장의 주요 지표로 사용한다. 주택 가격 분포의 중앙에 있는 중위값은 일부 극단적인 고가 또는 저가 거래가 전체 시장을 대표하지 않도록 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 중위값을 알아보면, 2024년 3분기 현재 10억원이다. 고가주택지역인 강남구는 24억원, 서민주택이 많은 노원구는 5억9000만원이다. 60억원이라는 큰 가격에 경도되는 경우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당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중위값 아파트는 10억원으로 6분의 1 수준이다. 또한 서울시 25구 중 아파트 거래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노원구 역시 60억원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물론 이 중위값이 누군가에게는 큰 금액이지만 맞벌이 가구에는 부담 가능한 수준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중위값의 빠른 상승세다. 서울시 중위값은 2023년 4분기(9억1000만원)부터 2024년 3분기(10억원)까지 누적 상승률이 10%에 달한다. 또한 향후 금리의 지속적 인하와 입주 물량 부족으로 인해, 2021년 고점(10억6900만원)에 다다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앵커링 효과로 인한 가격 착시를 감안하더라도 이 현실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시급하다.

※부동산 트렌드에 대해 궁금한 점을 jumal@chosun.com으로 보내주시면 김경민 서울대 교수가 골라 답합니다.

[김경민 서울대 교수·도시계획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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