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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박정훈 칼럼] 박정희의 ‘베트남 파병’, 김정은의 ‘러시아 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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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선이 북한 군인의 집단 탈북 루트가 될지 모른다…

역사 진보의 방향을 거꾸로 짚은 김정은의 도박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조선일보

우크라군이 올린 북한군 추정 병력 보급 현장 - 우크라이나 전략소통센터(SPRAVDI)가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수십 명이 지난 10월 18일 러시아군 관계자로부터 군복 등 보급품을 받아가는 모습이라며 공개한 영상. 영상에는 북한 말투로 "넘어가지 말거라" "나오라, 야"라고 하는 음성도 담겼다. /SPRAVDI 텔레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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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대의 우크라이나 투입을 놓고 ‘파병’이라거나 ‘참전했다’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자기 군복을 입고 독자적 지휘 명령 체계에 따라 싸우는 것이 파병이다. 북한군은 러시아 군복으로 갈아입고 신분을 위장해 배치되고 있다. 북한 당국이 파병 사실을 인정한 적도 없다. 더러운 전쟁에 끼어들 명분이 없다는 것을 본인들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돈 받고 싸워주는 용병(傭兵)에 지나지 않는다. 김정은은 군대 아닌 외화 벌이용 ‘전쟁 노동자’를 파견한 것이다.

김정은이 “한국의 베트남 파병을 모방했다”(뉴욕 타임스)는 분석들이 나온다. 1960년대 베트남 참전과 같은 군사·경제 효과를 노린 ‘북한판(版) 베트남 파병’이란 것이다. 턱도 없는 소리다. 베트남에 갔던 한국 군인은 용병이 아니었다. 국회 의결을 거친 공식 참전이었다. 미군과 차별화된 전술로 맹위를 떨친 맹호·백마·청룡부대는 부대 마크도 선명한 우리 군복을 입고 57만여 회 작전을 독자 수행했다.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다는 대의 명분도 있었다. 북한과 러시아가 쉬쉬 하며 숨기기 급급한 우크라이나 용병과 성격 자체가 다르다.

60년 전 베트남 파병은 미군을 한반도에 붙잡아 두려는 박정희 대통령의 승부수였다. 당시 미국은 주한 미군 2개 사단을 빼내 베트남전에 투입하려 했다. 미군이 일단 나가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군사·경제력에서 북에 밀리던 한국으로선 심각한 안보 위협이었다. 박정희는 미군 대신 한국군을 보내겠다는 제안으로 미군 차출을 막았다. 국내 여론도 우호적이었다. 6·25 때 우방국 도움을 받은 우리가 이제 남을 돕는다는 명분은 국민 지지를 받았다. 파병안은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를 통과했다.

첫 파병 2년 뒤인 1966년, 박정희는 장병 격려차 베트남을 찾았다. 공항에서 맹호부대 주둔지까지 헬기로 이동해야 하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악천후에 따른 사고 위험에다 적의 대공 사격이 걱정된 월남사령관 채명신이 만류했다. 박정희는 “여기까지 왔는데...”라며 한 치 망설임 없이 헬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최전선에서 적과 대치 중인 장병들을 만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김정은은 우크라이나 전선에 가서 군인들을 격려하는 일 같은 건 절대 못 한다. 제 목숨 걱정도 되겠지만 총알받이 군인에 대한 애정이라곤 한 푼도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려진 대로, 베트남 전쟁의 본질은 복합적이었다. 하지만 정보가 제약돼있던 당시 한국으로선 자유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안보적 고려에서 출발한 박정희의 파병 결단은 대한민국 발전에 ‘신(神)의 한 수’가 됐다. 한·미 동맹은 함께 피 흘린 혈맹으로 격상됐고, 한국군 전력은 획기적으로 현대화됐다. 구식 M1 소총이 M16으로 교체된 것도 이때부터다. 미국에게서 장비 제조 권한을 받아낸 박정희 정부는 국방과학연구소 등을 설립해 군수 산업 육성에 나섰다. 지금 세계 시장에서 꽃피운 K방산의 출발점이었다.

베트남 파병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압축 성장도 불가능했다. 장병들이 악착같이 모아 송금한 달러 수당, 기업들이 벌어온 공사 대금이 유입되면서 척박한 한국 경제에 부활의 씨앗을 뿌렸다. 이 귀중한 외화가 초기 자본으로 축적돼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종잣돈으로 쓰였다. 5000여 명이 전사하고 전쟁의 상흔도 컸지만 그들의 고귀한 희생 덕에 고도 성장의 기틀을 세울 수 있었다.

김정은도 이런 효과를 누리고 싶을 것이다. 러시아가 1인당 월 2000달러를 지급할 것이라 하니, 1만명 파견이면 연간 2억달러가 넘는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들어와도 북한은 ‘베트남 특수(特需)’ 같은 경제 효과를 이룰 수 없다. 체제 결함 때문이다. 그동안 북의 해외 노동자들이 그랬듯, 군인들이 목숨 값으로 받은 돈도 대부분 김정은의 금고로 들어가 통치 자금이나 핵·미사일 개발에 쓰일 것이다. 개인을 억압하고 성과를 수탈하는 착취적 제도에선 어떤 기회도 경제 번영으로 연결될 수 없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다론 아제모을루 등이 설파한 대로다.

김정은은 러시아에게 군사 기술을 받아내려 한다. 핵 잠수함, 탄도 미사일을 완성해 체제 유지에 써먹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우크라이나에 간 군인들이 체제 모순을 북한 내부에 전파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라 자체가 감옥인 곳에서 갇혀 살다 외부 세계를 목격한 젊은 군인들이 어떤 충격을 받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선이 북한 군인의 집단 탈북 루트가 될지 모른다.

60년 전 한국은 자유 진영의 편에 서서 번영의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김정은은 러시아의 더러운 침략 전쟁에 끼어듦으로써 지는 쪽에 베팅하고 있다. 역사 진보의 방향을 거꾸로 짚은 김정은의 무모한 도박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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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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