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자판기에서 校風 보인다
서울대생의 데자와 사랑
혹시 ‘데자와(TEJAVA)’를 아시는지. 1997년 국내 출시된 밀크티. 이른바 ‘서울대 음료’로 불리는, 자판기에서 보긴 했어도 별다른 구매욕은 건드리지 못했던 누런 색깔의 캔 음료. 대표적 비(非)인기 음료로 분류되지만 유독 서울대생이 애정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리하여 묘한 신비감마저 획득한 바로 그 제품. 최근 식음료 제조 회사 동아오츠카가 대학 내 자판기 입고 수량을 조사한 결과, 지난 한 달간 서울대에 납품된 데자와는 1만800캔이었다. 2위 이화여대(2250캔)보다 5배 가까이 많은 수치. 관계자는 “대학교 중에서는 압도적 1위이고 전국 매출로 따져도 서울대가 최상위”라고 말했다. ‘서울대 음료’ 이미지 덕에 일부 고등학생들도 데자와를 찾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국내 대학 중 서울대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캔음료 데자와. /동아오츠카 |
본 기자(서울대 출신 아님)가 이번에 난생처음 데자와를 음용해본 바, 그러나 그 컬트적 인기가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다. 혓바닥에 짝 붙지 않는 밍숭맹숭한 물맛. ‘솔의눈’ 등과 더불어 호불호 크게 갈리는 음료로 첫손에 꼽히는 이유일 것이다. 다만 “학부 시절부터 이틀에 한 번꼴로 마신다”는 로스쿨 재학생 김주성(27)씨는 “10캔 이상 마셔봐야 그 달짝지근한 진가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빈 캔을 모아 커다란 망치를 만든 친구도 있습니다.” 한 경제학과 졸업생(37)은 “자주 마시게 되는 특유의 교내 분위기가 분명 있었던 것 같다”며 “졸업 후에는 한 번도 안 마셨다”고 고백했다.
혹자는 풍수지리적 분석을 시도하기도 한다. 캠퍼스가 산 중턱에 있어 일조량이 적고 기온이 낮은 탓에 온장(溫藏)으로 데워 마실 수 있는 데자와가 인기를 끌게 됐다는 것. 실제로 업체 측에서 ‘따뜻한 데자와’를 홍보하기 위해 지난해 가을 서울대 캠퍼스에 특별 부스를 차려놓고 해당 음료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삼척시에 있는 강원대(해발고도 804m)에서는 데자와가 특별한 고려 사항이 아님을 감안할 때, 설득력 있는 분석은 아닐 것이다.
서울대에 놓인 자판기. 데자와 버튼(7개)이 가장 많다. /정상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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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가설은 기능성이다. 캔 겉면에 적힌 ‘고카페인 함유’(55㎎). 서울대 공대를 나와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유학 중인 한 학생(26)은 “밤새울 일은 많은데 커피의 쓴맛을 싫어하는 학생들의 대용품”이라며 “공대생들이 특히 즐겨 마셨다”고 말했다. 카페인이 에너지 드링크에 맞먹는 수준이라 시험 기간에 특히 유용하다는 증언. 사법연수원에서도 자주 목격된다고 한다. 박영주(37) 변호사는 “사법시험 붙고 사법연수원에 갔더니 공부할 때 데자와를 마시는 사람이 많아 놀랐다”며 “커피 많이 마시면 속이 쓰린데 이건 부드러워서 괜찮더라”고 말했다.
캠퍼스 내 데자와 가격은 2000년대까지만 해도 시중의 절반인 500원이었다. “지폐 한 장으로 두 캔을 살 수 있는, 그리하여 주변에 하나를 건네며 ‘전파’가 가능한 가격이었다”는 업체 측 설명. 주머니 사정 열악한 학생들에게 어필할 수 있던 가장 큰 요인으로 보인다. 그러다 2017년 100원을 인상했다. 데자와족(族)들의 집단 항의가 일어나기도 했다. 어느덧 1500원까지 올랐다. 비슷한 가격대 경쟁 상품도 늘었다. 지난 28일 기자가 네 시간 정도 서울대 곳곳을 살핀 결과, 데자와 마시는 풍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만난 사회학과 2학년 학생은 “아직 한 번도 안 마셔 봤다”며 “그저 서울대에 얽힌 재밌는 설화가 돼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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