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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목)

[주말은 책과 함께] 나쁜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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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록산 게이 지음/노지양 옮김/문학동네

생활 반경 내에 눈엣가시인 남자애가 하나 있다. 그에게 '공주X'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제 손으로 하는 것 하나 없이 늘 남을 시키려 들고,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자신의 말을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누군가 저를 물심양면 도와줘도 전혀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서다. 아 그가 최악의 인간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하기 싫은 일을 전부 남한테 떠맡긴다.

보고 있으면 속에서 천불이 나서 이름 대신 '공주X'이라는 멸칭을 하사했다. 한 가지 찝찝한 것은 그를 '공주X'이라고 부를 때마다 여성 혐오자가 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저 녀석을 '왕자X'이라고 불러주자니 어쩐지 배알이 꼴린다. 일단 '왕자X'이란 닉네임은 '공주X'처럼 타격감이 없다. 또 전자엔 경멸스러운 느낌이 희미하며, 녀석은 너무나도 멍청해 자신을 저렇게 불러주면 외려 좋아할 것 같다.

언젠가 학교 앞을 지나갈 때 남자 고등학생 한 무리가 저들끼리 장난이랍시고 서로를 'X발X아~. X신 같은 X.'이라고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다. 왜 저 사내 녀석들은 남자면서 동성 친구를 '놈'이 아닌 '년'으로 일컫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데 싫어하는 남자애를 '공주X'이라고 부르는 저 자신을 보면서 깨달았다. 내 안에 나도 모르게 깃든 여성 혐오 때문이란 것을.

우리는 왜 사회의 절반을 이루는 여성들을 몹시 싫어하고 미워하게 됐을까. 미국 사회에 페미니즘 열풍을 일으킨 문화비평가 록산 게이는 저서 '나쁜 페미니스트'에서 그 혐오의 기원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음악, 영화, 문학에서 여성은 수시로 비하와 멸시를 당한다"고.

래퍼 제이 지의 랩에는 'bitch(여성을 비하하는 속어)'가 쉼표나 마침표보다 더 자주 나오며, 방탄소년단 RM의 '농담'이라는 노래에는 "그래 넌 최고의 여자, 갑질 / So X나게 잘해 갑질 / 아 근데 생각해보니 갑이었던 적 없네 / 갑 떼고 임이라 부를게, 임질"이란 가사가 등장한다.

팝 음악이 너무나도 중독성이 있어서 저도 모르게 자신의 존재를 깎아내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책하던 록산 게이는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나를 따라다닐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를 환영한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니까. 그래서 엉망진창이니까. (중략) 완벽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모든 해답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전부 옳다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믿는 것을 지지하고, 이 세상에 뭔가 도움될 만 한 일을 하며 온전히 나 자신으로 남고 싶을 뿐이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분야에서의 성 평등을 지지하는 한 당신은 페미니스트가 맞다고 저자는 말한다. 448쪽.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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