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이슈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

“저널리즘, 권력·자본·기술 복합 위기…AI가 ‘기자의 양심’ 대신 못 써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자유언론실천선언 50주년’ 좌담회가 열린 18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본사 대회의실에서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염규현 MBC 도스트일레븐 경영기획본부장, 박종화 뉴스타파 피디, 김태욱 언론사 지망생,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 임아영 경향신문 플랫팀장(맨 왼쪽부터).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부당한 압력으로 언론 자유가 위협받던 시기, 동아일보 기자 180여명은 이에 저항하여 ‘자유언론실천선언’(선언)을 내놓았다. 권력의 탄압에 맞선 언론인의 저항은 전국으로 확대되며 언론 자유 운동의 이정표를 세웠으나, 반세기가 지난 현재 한국 언론은 미디어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와 수용자의 외면 등 더욱 복합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비춰 선언의 현대적 의미를 되짚어보고 언론계의 고민을 나누고자 한겨레가 저널리즘의 위기와 언론의 미래’ 좌담을 마련했다.



이번 좌담에는 각 언론사에서 인공지능(AI)과 젠더, 독립언론 등을 주제로 ‘새로운 저널리즘’을 실험 중인 현직 언론인과 예비 언론인이 참여했다.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이 진행을 맡고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 임아영 경향신문 플랫팀장, 염규현 문화방송(MBC) 도스트일레븐 경영기획본부장, 박종화 뉴스타파 피디, 언론사 지망생 김태욱씨가 자리했다. 좌담은 지난 1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진행했다.



한겨레

제정임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장. 경향신문·국민일보 등에서 14년간 기자로 일했다. 2008년부터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현재 저널리즘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동네북 경제를 넘어’, ‘경제뉴스의 두 얼굴’, ‘벼랑에 선 사람들’ 등 책을 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장) 2024년을 사는 언론인으로서 선언을 어떻게 읽었나. 당시 동아일보·조선일보 기자들은 ‘권력의 탄압과 굴종하는 언론’이라는 구도에서 위기를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나.



박종화(뉴스타파) 뉴스타파는 지난해 9월14일 검찰로부터 사무실을 압수수색 당했다. 그날 유튜브 생중계를 담당했다. 검찰이 7∼8시간 사무실을 샅샅이 뒤지는 모습을 중계하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많은 동료가 아직도 압수수색 당하는 꿈을 꾼다. 그때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선언을 보면 “언론인 불법연행이 자행된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는다”는 결의문이 있다. 저희도 선배들 조사받고 올 때까지 퇴근하지 않고 기다리곤 했다. 선언의 ‘언론인 연대’ 정신이 저에게도 위로가 됐다. 지금은 ‘언론장악 카르텔 추적’이라는 이름으로 한겨레 등 다른 언론사와 협업 취재 프로젝트도 하고 있다.



임아영(경향신문) 이 정부 들어 다양한 방식으로 언론에 대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데, 언론사들이 잘 연합해서 대응하고 있는지는 반성할 지점이 있다. 다만, 지금 현실의 문제는 50년 전보다 복잡하다. 언론을 길들이려는 자본 권력의 시도가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독자들과 거리는 너무 멀어졌다. 그런 현실에 어떻게 적응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데 또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위기의 양상은 복합적이고, 레거시 미디어의 체질 개선은 쉽지 않다. 그때그때 언론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노력해왔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한겨레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 1993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대 초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보도로 각종 언론상을 받았다. 지난해 6월 한국일보에 신설된 뉴스스탠다드실 실장을 맡았다. 한국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생성형 AI 활용 준칙’을 제정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희원(한국일보) 지금의 위기는 권력의 탄압 탓만은 아니다. 소위 인터넷 혁명 이후 미디어 기업의 생존이 어려워졌고, 이는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공영방송이나 통신사를 제외하면 언론사는 시장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사기업인데, 지금의 뉴스 시장은 좋은 저널리즘이 보상받지 않는 구조다.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비용과 인력, 시간을 많이 들여서 생산한 고퀄리티 뉴스에 대한 보상이 없기 때문에 저비용의 값싸고 단순하고 자극적이고 정파적인 뉴스로 치우치게 된다.



염규현(문화방송) 2000년대 이후 디지털 전환의 가장 큰 특징은 ‘길이의 제약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신문은 지면, 방송은 편성 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기사 한 문장을 어떻게든 줄이려고 해 왔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로 오면서 그 형식이 해체됐고, 팩트보다 의견·논평 비중이 늘었다. 국회 입법조사처 통계를 보면 정치 유튜브의 경우 내용의 10%만 ‘사실 전달’이고, 나머지는 논평·의견이라는 조사도 있다. 시쳇말로 ‘뇌피셜’ 기사가 양산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구독자를 모으기 위해 더 자극적으로 특정 진영에 호소하고, 결국 자본의 영향력에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으로 간다.



김태욱(예비 언론인) 기자라는 목표를 부끄럽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주변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욕먹는 직업’이고 ‘사양산업’이라는 것이다. 그런 반응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언론사 준비생의 답답함, 외로움이 한국 언론의 위기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에 대한 이미지가 이런 식으로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과거처럼 시민의 힘을 동원해 언론 자유를 지켜내는 일 역시 어려워 보인다. 정파적인 문제가 개입하면 더 그렇다. 어느 쪽이든 진영 논리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언론을 적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한겨레

임아영 경향신문 젠더데스크 겸 플랫팀장. 2008년 경향신문에 입사해 전국부, 사회부, 문화부, 정책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쳤다. 에세이집 ‘이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됐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결정했다’ 등을 썼다. 지금은 경향신문의 젠더 버티컬브랜드 ‘플랫’ 팀장과 젠더데스크를 맡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제정임 미디어 지형의 급변 속에 ‘언론을 혁신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오늘 참석한 언론인들은 각자 자리에서 ‘새로운 저널리즘’을 실험하는 이들이다. 언론의 혁신은 어디까지 와 있나.



염규현 저는 올해 문화방송에 인공지능 전략 자회사(도스트일레븐)를 설립하여 방송에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언론사의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된다면, 자본으로부터 독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 실제 그 사례가 호주에 있다. 미디어 기업 ‘뉴스코프 오스트레일리아’(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 자회사. 호주 전역에 수많은 지역지와 온라인 매체, 티브이 채널을 소유하고 있다)의 마이크 밀러 회장이 지난해 7월 세계뉴스미디어총회에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며 자랑했다. 핵심은 생성형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날씨, 교통 관련 기사 생산량을 확 늘리고, 기자들은 양질의 저널리즘에 집중한다. 월간 이용자(total monthly audience)가 1800만명까지 늘었다고 한다. 인공지능 전환은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젠 기자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국회 앞에서 쭈그려 앉아 키보드 받아치는 식의 노동 집약적인 일은 대체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언론사 재무 구조를 개선하고,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도구로 순기능 할 수 있다.



임아영 ‘플랫’은 경향신문의 여성 서사 아카이브 채널이다. 여러 목표를 담고 있는데, 우선 미디어의 젠더 편향성을 극복하려는 시도이고 뉴스의 혁신을 위한 노력이면서 동시에 ‘독자들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저희 팀은 뉴스룸에서 나오는 기사를 재가공하기도 하고, 오리지널 콘텐츠도 만든다.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 ‘더 이상 한명도 잃을 수 없다’, ‘우선, 나로 살기로 했다’ 등 5·18 성폭력, 교제 폭력, 여성의 경제 활동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사라는 것이 과연 뉴스로만 소화될 수 있느냐’라는 의문이 남는다. 뉴스의 형태를 넓혀야 한다는 고민이 있다. 독자들과 만나는 전시회 등 행사도 열었는데 ‘욕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느끼면서 오히려 기자들이 많은 위로를 받았다.



한겨레

염규현 문화방송 도스트일레븐 경영기획본부장. 2010년 문화방송에 기자로 입사했다. 2021년 문화방송 사내 벤처에 선정되어 유튜브 뉴스채널 ‘딩딩대학’을 제작했고, 지금은 AI전략자회사 ‘도스트일레븐’의 경영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다.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희원 ‘뉴스 유료화’를 목표로 독자와의 관계를 끈끈하게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유료화까지 가서 성공하는 모델은 많지 않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언론사는 안 된다, 혁신 못 한다, 완전히 새로운 것이 생겨야지 기존 조직에서는 못한다’라고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경영진에 비전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유료화든 다른 방식이든 장기적인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방향을 수립해야 하는데, 그런 경영진을 찾기 어렵다.





제정임 최근 ‘유튜브냐 기성 언론이냐’ 논쟁이 있었고,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공천 개입 의혹’ 등은 ‘서울의소리’ 같은 인터넷 매체에서 첫 보도가 나오고 주요 언론이 따라가는 상황이다. 이런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유튜브에서 보도를 주도하는 현상은 어떻게 생각하나.



김희원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발굴했든 다양한 경로를 통해 팩트가 발굴되고, 언론의 역할이 확대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고, 서로 경쟁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성 언론은 유튜브로 더 많이 갈 것이고, 유튜브는 저널리즘적인 성격이 더 높아질 것이다. 서로 결합하고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만 유튜브는 알고리즘이 있어서 정파성이 강한 것이 사실이다. 의견과 논평이 이용자들의 정파적 기대에 부합하는 쪽으로 가면서 사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그런 정파성이 보도 기능을 압도할 정도가 되면 언론이라고 보긴 어렵다.



박종화 기성 언론에서 취재하는 방식이 있다. 출입처가 있고, 국회의원을 통해 기삿거리를 발굴하기도 하는데, 그 외의 방식으로 나오는 기사들이다. 특히 ‘서울의소리’에선 ‘김건희 7시간 녹취록’, ‘명품백’, ‘김대남 녹취록’까지 연달아 터뜨리고, 뉴욕타임스에서도 보도하는 상황이다. 저는 이것이 기존 방식을 넘어선 취재였기 때문에 가능한 보도였다고 생각한다. 이런 취재가 조금 공격적이고 날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부패한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는 중요한 보도였다.



한겨레

박종화 뉴스타파 피디. 2016년 정치 뉴스 전문 미디어 스타트업 ‘어니언스’를 만들어 활동하다 이듬해 뉴스타파에 입사했다. 현재 5개 언론사가 협업한 ‘언론장악 카르텔 추적보도’에 참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제정임 선언의 핵심 메시지는 ‘자유언론이란 언론 종사자들의 실천 과제’라는 점이다. 50주년을 맞은 오늘의 언론인들이 실천할 과제는 무엇인가.



염규현 언론인 스스로 ‘양심의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자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이렇게 기사를 쓰면 취재원에게 (항의) 전화가 올 거라는 점을 알지만, ‘틀린 건 아니잖아’라며 외면하곤 한다. 인공지능이라는 도구도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이 양심의 소리까지 대신 써주진 않는다. 취재 현장에서의 ‘주제 의식’, 속칭 ‘야마’라고 하는 것이 건강한지, 상대 반론을 충분히 반영했는지는 결국 내가 인공지능 도구에 어떤 명령어를 넣는지에 달렸다.



박종화 언론 스스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많이 사라졌다. 한국방송을 보면 ‘미디어포커스’, ‘저널리즘 제이(J)’ 등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언론이 이렇게 정부로부터 탄압받고 있지만 시민들의 마음은 약간 냉소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느낀다. 그건 반성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부에서 자성하는 언론인을 볼 때 시민들도 ‘언론 혐오’를 넘어 연대의 손길을 내어주실 수 있을 것이다.



임아영 2000년대 후반에 입사했는데, 그때부터 신문은 늘 위기였고 ‘이게 과연 좋은 뉴스인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뉴스라는 것이 과연 뭔지, 다양한 형태 확장, 질적 향상을 고민하는 것이 저희가 할 일이라고 본다. ‘플랫’도 그런 시도 중 하나다. 저널리즘은 사라질 수 없다. 형태가 바뀔 뿐이다. 언론사는 어렵지만 그 안에서 계속 길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 길을 넓히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한겨레

언론사 지망생 김태욱씨. 지난 2월 한양대 정치외교학·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제정임 사람들이 더는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제 생각은 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한 정보에 대한 갈증이 강한 시대다. 세상이 너무 불확실하고 수많은 재난이 우리를 흔들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하고 두려워하면서 정확한 정보, 잘 정리된 지식, 세상을 보는 데 도움이 되는 관점, 이런 것을 갈구한다. 다만 조간신문을 배달받아 보거나, 밤 9시 텔레비전 앞에 모여 뉴스를 보는 방식이 아닐 뿐이다. 매체별로 실천 과제는 다르겠으나, 모든 언론인이 선언의 메시지를 되새기고 더 투명하고 정직하고 정확해지려는 노력을 지속하길 바란다. 시민의 역할도 중요하다. 언론 전체를 매도하고 돌팔매질을 해서 그 기능이 위축된 사회는 어떤 사회일지 다 같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부당하게 탄압받는 언론에 대해서는 함께 목소리도 내주시고, 잘한 언론은 칭찬도 하고 후원도 하면서 함께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정리/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