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책임자로 재판에 넘겨진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1심 선고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자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청사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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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를 믿고, 국민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합니까. 누구를 믿고 살아야 생명을 지킬 수 있느냐고요.”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참사 2년여만에 1심 무죄 선고가 내려진 17일, 서울서부지법 304호 법정에 비명이 울렸다. 재판 전 굳센 표정과 흐트러짐 없이 꼿꼿한 자세로 ‘김광호 엄벌 촉구’ 손팻말을 들었던 유가족들은 기소된 경찰 중 최고 ‘윗선’인 김 전 청장의 무죄 선고가 임박할수록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몸을 작게 웅크렸다. 입을 틀어막은 손수건 사이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자리를 박차고 법원 복도로 나온 유가족들은 무너져 내리듯 주저 앉아 읊조렸다. “이게 무슨 나라야.”
이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재판장 권성수)는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사전 대비를 미흡하게 하는 등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구체적인 사고 위험을 예상하지 못했으므로 사전 대책을 마련할 의무가 없었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압사 위험 관련 112 신고가 쏟아지는데도 상황실을 비운 채 뒤늦게 상급자에게 보고해 참사를 키운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를 받는 류미진 당시 서울청 112상황관리관과 정아무개 당시 서울청 112상황팀장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이태원 참사 책임자로 재판에 넘겨진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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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은 지난 15일부터 이날까지 서부지법 정문 앞에서 김광호 전 청장에 대한 ‘엄벌 촉구 릴레이 피케팅’을 벌여 왔다. 이날도 유가족들은 재판 시작 1시간 전부터 법원 정문 앞에 모여 ‘6시34분부터 신고 빗발쳤는데 경찰은 왜 아무런 조치 안 했나?’, ‘대규모 인파보고 무시 안전대책 미수립, 김광호 서울청장 엄벌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이날 재판이 시작된 오전 10시40분께 법정은 방청석 자리가 부족해 다닥다닥 붙어 선 유가족들로 가득 찼다. 이들은 ‘김 전 청장이 사전에 참사 가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재판부 설명에 “말도 안 된다”고 탄식하거나 눈물을 흘리며 선고를 경청했다. 1시간 여의 재판 끝에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봐서 무죄로 판단한다”는 재판부 선고가 나오자마자, 유가족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 전 청장을 향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김 전 청장은 방청석에 눈길을 주지 않은 채 그대로 법정을 떠났다.
김 전 청장이 탑승한 차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드러눕고 차량을 치며 항의하던 유가족들은 경찰에 가로막혀 이내 땅에 주저앉아 서로를 껴안고 오열했다.
재판이 끝나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정민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사법부의 정의를 밝히는 공판이 아니라 한편의 코미디 같았다. 문제는 있어 보이는데 죄는 없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고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112 신고로 살려달라고 그렇게 외쳤어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출동도 하지 않은 것이 죄가 없다면 대체 국민들은 구조 요청을 어디에 해야 하는 거냐”면서 “검찰은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기소 의견에도 수사심의위원회의 판단이 나오기까지 김 전 청장의 기소를 미뤘다. 그 결과가 오늘 이렇게 나온 것”이라며 비판했다.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등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직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김광호에 면죄부를 부여한 재판부는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고나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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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 등은 이날 재판 직후 논평을 내어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을 예견하고도 예방과 대비, 대응의 책무를 방기·외면했고 그런데도 이제껏 자신들의 책무를 부정해왔던 서울경찰청 주요 책임자들이 면죄부를 얻는 것에 강한 규탄의 의견을 표명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백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최근 발족한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형사법의 형사 재판으로는 밝히지 못한 것들을 제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수사와 재판에서 해소하지 못한 경찰 대응 관련 의문들을 정리해 지난 2일 특조위에 진상규명 조사신청서를 제출한 바 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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