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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파운드리는 제조만 한다?… TSMC, 반도체 설계·소프트웨어 기술까지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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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대만 타이중에 있는 TSMC 팹(반도체 생산공장)./T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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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정이 복잡해지고 인공지능(AI) 시대 새로운 설계 기법이 도입되고 있는 가운데 TSMC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술뿐 아니라 반도체 설계의 기초 단계인 EDA(반도체설계자동화) 분야 3강 기업들을 파트너로 끌어들이고 있다.

EDA 기업은 TSMC의 주 고객사인 엔비디아, AMD, 퀄컴 같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에 설계도구와 제어 및 계측 소프트웨어를 공급한다. 글로벌 EDA 시장은 시놉시스, 케이던스, 지멘스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3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80%를 상회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최근 EDA 기업들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AI 칩 생산에 최적화된 프로세스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와 같은 최첨단 기술을 복잡다단한 설계·공정에 접목해 칩 개발에 필요한 엔지니어, 개발 시간, 오류 등을 줄이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 파운드리 업체는 팹리스의 설계도를 받아 생산만 대신 해주는 역할을 해왔지만, 이제는 설계 과정까지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EDA는 반도체 집적회로(IC)나 인쇄회로기판(PCB) 디자인을 설계·검증할 때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다. 칩을 만들기 전에 다양한 회로 설계를 시뮬레이션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기술이다. 미세공정 기술이 한계에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기업이 칩 개발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필수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기술이다. 최근에는 1000억개 이상의 트랜지스터를 하나의 칩에 집적해야 하는 만큼 EDA 없이는 칩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

케이던스의 경우 TSMC와 공동으로 AI 플랫폼 ‘케이던스.AI’를 개발하고 있다. 케이던스.AI는 칩에서 시스템까지 설계 및 검증 등 반도체를 만드는 전 과정에 AI를 적용해 설계 자동화 시간을 단축하고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다. 여기에 두 회사는 설계상에서 종종 발생하는 버그 해소와 수율 향상 등을 위한 데이터 플랫폼을 공동으로 구축하기도 했다.

시놉시스는 첨단 디지털 및 아날로그 칩의 설계, 검증, 테스트, 제조를 위한 독자적인 AI 구동 EDA 제품군인 ‘시놉시스.AI’를 TSMC에 제공하고 있다. 시놉시스는 최근 컨퍼런스에서 “지금까지 수백개의 칩을 시놉시스.AI를 통해 테이프아웃(Tape-Out·시제품 양산)했으며 AI를 사용하지 않은 프로세스와 비교하면 성능, 소비전력, 면적(PPA)을 10% 이상 향상 시켰다”고 밝힌 바 있다.

TSMC와 시놉시스는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 선두주자인 엔비디아,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과도 AI 칩 설계 제조 가속화를 위한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했다. 지난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네 기업의 협업 프로젝트를 설명하며 “칩 산업은 전 세계 모든 산업의 기반이지만 반도체 생산 기술의 핵심인 리소그래피(노광)는 물리학의 한계에 도달해 가고 있다”며 “엔비디아, TSMC, ASML, 시놉시스는 친환경적으로 파운드리 생산량을 대폭 늘리고 2나노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기반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EDA, 팹리스, 장비업체와의 긴밀한 파트너십이 TSMC에 집중되고 있는 것은 현재 고성능 서버용 AI 칩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이 사실상 TSMC 한 곳 뿐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3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이 시장의 신뢰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 5나노, 4나노 역시 약속한 성능의 칩을 뽑아내지 못하면서 다수의 고객사가 등을 돌린 상황이다.

이외에도 TSMC는 설계와 제조를 블록처럼 구성하는 ‘모듈형’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TSMC는 지난해 ‘3D블록스(blox)’라는 새로운 설계 언어를 출시했는데, 이는 반도체의 물리적 구조와 연결 구조를 융합하는 하향식 설계 방식이다. TSMC는 이 설계 생태계에 EDA, 검사, 팹리스 등 다양한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협회(SEMI)의 한 관계자는 “TSMC가 파운드리 분야에서 지금처럼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건 자체 기술력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과의 개방형 협업 생태계를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구축해왔기 때문”이라며 “고객사들과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고객사에 철저하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 정신’이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황민규 기자(durchma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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