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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평화의 고래 도시 [남종영의 인간의 그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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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달 26일 울산시 남구 장생포의 고래문화마을에 설치된 고래 모형 뒤로 고래축제의 불꽃놀이가 열리고 있다. 사진 남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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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위원



고래 전쟁은 끝났다. 포경선에서 발사하는 날카로운 폭약 작살도, 수족관에서 힘겹게 몸부림치는 돌고래의 고통도 끝나간다.



“2년 전 국제포경위원회에서 한국 정부가 포경이 아닌 고래 보전의 편에 서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울산에서 열린 고래문화학술대회에서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의 박겸준 박사가 말했다. 시대는 변했다. 돌고래를 가두고 구경하는 산업도 곧 사라질 것이다. 지난해 12월 동물원·수족관법이 개정되어 더는 전시·공연 목적으로 돌고래를 새로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5곳의 수족관도 돌고래가 죽을 때 사라질 것이다. 한때 포경 재개를 주장했던 김두겸 울산시장도 변화를 받아들인 듯했다.



“고래는 굴뚝 없는 산업이지만, 지금 우리는 고래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울산은 ‘고래 도시’를 표방했다. 아니, 정확히는 ‘포경 도시’를 표방했다. 세계 각국은 국제포경위원회 협약에 따라 1986년 상업 포경을 중단했다. 반면, 대표적인 포경항 장생포가 있는 울산의 일부 산업계와 지역 정가는 지속해서 포경 재개를 요구해 왔다. 서구와 일본이 고래를 싹쓸이해 놓고는 한국 같은 후발 개도국에 포경 중단을 요구한 것에 대한 민족적 반감, 1960~70년대의 포경에 대한 노스탤지어 등이 이러한 멘탈리티를 이뤘다.



하지만, 사람은 죽고 시대는 변한다. 고래기름은 석유로 대체된 지 오래고, 유일한 사용처인 고래고기를 먹는 사람의 수는 줄었다. 이날 밤 울산고래축제에서 고래고기는 볼 수 없었고, 주변의 고래고기 식당조차 손님이 뜸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고래를 잡는 아이슬란드, 일본, 노르웨이도 이러한 문화적 변화에 직면해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고래 도시 울산이 풀어야 할 문제는 또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의 해양포유류보호법(MMPA)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국가에 수산물 수출 관련 불이익을 주는 ‘동등성 평가’가 2026년부터 시행된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밍크고래 혼획률을 기록하고 불법 포경으로 얻은 고기가 유통되는 한국으로선 수산물 수출에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울산의 고래 문화를 연구하는 한 학자가 말했다.



“어쩌면 개 식용 종식 같은 강제적인 법안이 제정될 수도 있습니다. 울산이 고래 도시로 지속 가능해지려면 다른 대안이 필요합니다.”



울산은 고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곳이다.



우선, 내년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다리는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신석기 혹은 청동기 시대의 고인류가 가파른 절벽에 고래 57점을 새겼다. 세계 최초의 포경 기록이자, 고고학자들의 수수께끼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고래 그림을 그렸으며, 제대로 된 작살도 없을 터인데 어떻게 고래를 잡았는지 등 의문투성이다.



일제 강점기, 멸종 수준으로 학살된 귀신고래 또한 고래를 기다리는 울산의 상징이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모델인 미국의 탐험가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는 귀신고래를 보려고 1912년 장생포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가 남긴 100년 전의 귀신고래 기록과 사진은, 자본의 탐욕과 식민주의의 교차점에 불행한 귀신고래가 난자당했음을 보여준다. 조선인은 일본에 지배받는 식민지 민중이었다. 동물의 몸 또한 인간에 지배받는 식민지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울산이 평화의 고래 도시가 되려면, ‘돌고래 바다쉼터’를 울산에 설치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제돌이를 필두로 남방큰돌고래 8마리를 바다로 돌려보낸 ‘돌고래 야생방사 선진국’이다. 외국에서 만난 전문가들은 정부와 과학자 그리고 시민단체가 함께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럼에도 지금 국내 수족관에 큰돌고래 15마리, 흰고래 5마리가 갇혀 있다. 울산에는 큰돌고래 4마리가 산다. 이들은 일본과 러시아에서 수입된 개체로, 야생에 돌려보낼 수 없다. 대안으로 좁은 만에 울타리를 치고 이들이 좀 더 편안한 야생 환경에서 여생을 보내도록 하자는 게 바다쉼터다. 돌고래야, 미안해. 너에게 최선을 다할게.



한국은 어쩌면 상충하는 포경의 역사와 돌고래 해방의 경험을 동시에 이야기할 수 있는 콘텐츠와 멘탈리티를 가졌다. 그렇게 인간과 동물, 평화의 고래 도시의 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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