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석 작가. 정대하 기자 |
‘마지막 새벽’, 계단 옆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앳된 두 소년. 그들의 주검 옆엔 반쯤 베어 먹다 만 단팥빵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작전 직후 노먼 소프 기자가 촬영한 안종필과 문재학 군의 최후다. 문재학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이다.
한국 수묵화의 거장 김호석(67) 작가는 15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단팥빵을 먹다가 떨어뜨린 두 소년의 주검이 찍힌 사진을 보고 가슴이 먹먹했다”고 말했다. 그는 막내 시민군 문재학의 죽음을 담은 작품에 ‘마지막 입술’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슬픔을 바로 표출하지 않고 먹과 붓으로 절제하며 그린 그림이다.
1980년 5월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작전 직후 노먼 소프 기자가 촬영한 안종필(앞)과 문재학 군의 최후 사진(위쪽)과 김호석 작가의 작품 ‘마지막 입술’. 문체부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 제공 및 전남대 5·18연구소 제공 |
김 작가는 16일부터 전남대 용지관 기획전시실에서 ‘무등의 묵:검은 울음’이라는 주제로 초대전을 연다. 전시작 29점 가운데 21점이 신작이다. 김 작가는 “5·18과 광주정신이 이번 전시회 주제이지만, 작품은 직접적인 것보다 은유와 상징으로 표현한 게 대부분”이라며 “5·18이 어떤 정신인지를 사유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 은유의 기법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5·18 당시 홍익대 4학년 학생이어서 오월 현장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듬해 광주 보병학교에 입소하면서 분위기를 읽었다. 김 작가는 “이번에 5·18 현장 사진들을 보며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상무관 목관 안에 안치됐던 주검들을 형상화한 ‘하얀 침묵’은 ‘냄새’를 그린 그림이다. 김 작가는 “가족의 주검을 매장하면서 맡은 냄새, 주검에서 나는 냄새를 표현하고 싶었다. 그 냄새가 많은 이들의 성찰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북 정읍 출신인 김 작가는 한지와 먹을 고집한다. 그는 ‘미술운동’을 하는 화가는 아니지만, 동학농민혁명과 5·18, 6월항쟁 등 역사적 사건을 화폭에 꾸준히 그렸다. 광주와의 인연은 지난해 5월과 7월 광주5·18기록관과 광주시립미술관기록관 초대전을 잇따라 열면서 더 깊어졌다. 당시 역사화와 인물화, 농촌 풍경화와 가족들의 일상을 담은 작품들을 본 관람객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김 작가는 “이번 5·18연구소 초대전은 5·18을 의로운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을 위한 전시”라고 했다. 그리고 이번 초대전의 소제목을 ‘2080년을 위한 작품전’으로 붙였다. 김 작가는 “5·18민주화운동 100주년 때 5·18수묵화들이 전시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렸다”고 말했다.
김호석 작가의 ‘하얀 침묵’. 전남대 5·18연구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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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5·18연구소가 주최하고 주관하는 이번 전시회는 24일까지 이어진다. 민병로 전남대 5·18연구소장은 “광주 정신을 그린 수묵화 작품들에서 민주, 인권, 평화에 대한 시대적 가치를 발견하고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회”라고 밝혔다.
김 작가 초청 학술 심포지엄은 18일 전남대 용지관에서 열린다. 심포지엄 발제는 이번 전시 기획자인 김허경(전남대) 미술평론가 등 각계 전문가 10명이 맡는다. 김허경 미술평론가는 “김호석의 수묵화는 현대적·철학적 변용의 경계에서 광주 정신의 새로운 서사를 표방하고 있다”며 “‘광주정신’이 어떻게 예술적으로 승화됐는지를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종합토론은 박구용(전남대)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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