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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이슈 미술의 세계

[그 영화 어때] 박찬욱은 만족했을까, 넷플 공개 후 평가 엇갈리는 ‘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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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94번째 레터는 1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전,란’입니다. 이미 보신 분들도 있겠네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화제가 집중됐죠. OTT 영화가 부국제 개막작이 된 것은 처음이었으니까요. 영화관 상영을 전혀 하지 않는 OTT 전용 영화인데, 저는 운좋게도 부국제 기자시사회 때 영화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보면서 처음 든 생각. ‘이게 정말 박찬욱이 만들고 싶었던 영화인걸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아래에 말씀드릴게요. 가능한 한 다른 기사에 나오지 않은 내용으로 적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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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에서 진행된 넷플릭스 영화 '전,란' 제작보고회.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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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은 저희 신문 지면 부국제 기사에 일부 들어갔고, 백수진 기자가 ‘그 영화 어때’ 91번째 뉴스레터에서도 말씀드렸는데요, 저는 백 기자와 약간 다른 시각에서 봤습니다. 부국제 시사회 끝나고 백 기자는 “저는 무척 좋게 봤다”고 하고, 저는 “이걸?” 이라고 했거든요. (저희 두 사람이 번갈아 레터를 보내드리는 것도 독자분들께 다양한 시각을 전해드리고 싶어서란 거 아실 거에요. 다른 것은 소중한 것이니까요.) 넷플 공개 후에도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죠. 그 차이가 뭘까요.

‘전,란’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른 기사들에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 근데 저는 궁금했던 부분 하나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아니, 제목에 저 쉼표 왜 들어가?’ 사소한 거 같지만, 전 작품명은 소설이든 영화든 회화든 작가의 심중과 가장 먼저 닿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왜 그런지 꼭 따지거든요. (예를 들어 홍상수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띄어쓰기가 전혀 없죠.) ‘전,란’은 박찬욱 감독이 각본과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에(제작도 박 감독이 설립한 모호필름에서 했습니다) 특히 의도가 궁금했습니다. 문장부호 하나에도 반드시 뜻이 있는 분이시니까요. 다행히 궁금증을 풀 수 있었습니다. 작품 전체를 설명한 자료에서 박 감독께서 밝히셨더군요. 독자분들을 위해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시대상을 담은 제목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란’을 먼저 떠올렸는데 곧이어 전쟁과 반란을 구분한다는 아이디어가 따라왔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난리’ 가 아니라 ‘전쟁,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반란’ 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쉼표가 필요했죠.”

아, 이제야 묵은 체증이…. 이 부분은 작품을 이해하는데도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바로 묻고 싶어지시죠? 그 의도가 작품에 살아있느냐. 아니요, 전 살아있지 않다고 봤습니다. 전쟁,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반란'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한 난리’만 보였습니다.

그건 왜 그렇냐, ‘전,란’의 연출은 박찬욱이 아니라 김상만이기 때문입니다. 부국제에서도 ‘전,란’을 박찬욱 영화로 밀었는데, 엄연히 김상만 감독의 연출작입니다. (김 감독은 박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 미술감독이었습니다) ‘전,란’이 부국제 개막작이 된 데엔 박찬욱 브랜드가 작용했겠고, 넷플에서 보신 분들 중에서도 ‘박찬욱 영화 아냐?’ 하실 분들 많을텐데, 아니죠. 김상만 영화고, 정확히 그 결과값이 반영되어 지금의 버전이 나왔다고 봅니다. 김상만 감독도 언론 공동인터뷰에서 “(박 감독이) 각본 과정에 참여했지만, 연출에는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지켜봐 줬다”고 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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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란'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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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제 시사회 때 ‘전,란’을 보면서 제가 수첩에 적은 메모 중 하나. ‘계급은 있는데 관계가 안 보임’. 저는 이 부분이 ‘전,란’을 흔히 말하는 ‘넷플 영화’ 즉, 작품성보다는 오락성, 이른바 킬링타임용 영화로 안주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전,란’엔 계급 차이에 대한 묘사와 강조는 잘 돼있습니다. 하지만 계급간 투쟁이 절실해지려면 그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이 생생해야 하고, 그 인물들 간의 관계가 살아있어야 합니다. ‘전,란’은 그렇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특히, 핵심 중 핵심인 두 주인공 강동원(천영)과 박정민(종려)의 관계가 너무도 미약하게 연출돼 있습니다. 둘의 검이 부딪힐 때 애증의 핏방울이 당장이라도 사방에 뿌려질 것처럼 관객이 느끼려면, 서로를 향한 끊어낼 수 없는 감정을 담은 부분이 지금 버전보다 더 강조됐어야 하거든요. 현재와 과거를 왔다갔다하면서 둘의 관계를 잘 쌓았어야 하는데, 왔다갔다하기만 하고 쌓질 못했습니다. 그나마 박정민이 연기를 워낙 잘해서 지금 정도로 살려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더 밋밋했을 겁니다. 보다보면 ‘아, 대본엔 뭔가 있었을 거 같은데?’라고 짐작되는 장면이 있긴 해요. 그런데 좀 들어가려다 말고 미끄러지고, 좀 보여주려다 말고 끝나버리더군요. 대사라도 한 번 꽂혔으면 좋았을텐데요. 예를 들어 ‘불한당’에서처럼 “차라리 끝까지 모르지 그랬어”(설경구가 임시완에게), 이런 식으로 한마디만 콱 박혀도 훨씬 나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관계보다 계급, 계급 간의 부딪힘을 선택했다보니 칼싸움을 원없이 보여줍니다. ‘전,란’에 만족하신 분들 중에 액션이 괜찮았다는 분들 있으실텐데, 공들여 찍은 건 맞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저는 보면서 “이런 건 ‘바람의 검심’에서 많이 봤는데” 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인물과 그 인물간 관계가 미약하다보니 계속된 칼싸움이 나중엔 그저 싸움을 위한 싸움, 액션을 위한 액션으로 보이더군요. “여기서 한 발만 더 나가면 ‘노량’ 되겠는데” 싶어질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노량’이라함은 작년에 개봉한 이순신 영화 ‘노량’입니다. 제가 ‘그 영화 어때’ 35번째 레터에서 ‘무자비한 음파공격’ ‘과유불급’이라고 말씀드렸죠.) 액션을 위한 액션을 넣다보니 맥락 없는 장면도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1시간반 즈음에 나오는 강동원과 박정민의 야밤 결투 장면은 그 지점에 그 싸움이 꼭 필요한지가 설득이 되지 않습니다. 박정민이 칼싸움까지 그렇게 잘한다는 걸 이번에 알게 돼서 좋았다는게 유일한 만족감일뿐, 어색한 CG만 두드러져서 저로선 아쉬움이 더해진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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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란'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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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 말씀을 안 드릴 수가 없는데, ‘전,란’이 OTT 영화라는게 컴퓨터 그래픽 장면에서도 무척 눈에 띄더군요. 거대한 집채가 화마에 휩싸인 장면에서는 인물과 배경이 각각 따로 노는데,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아뇨, 아닐 거 같습니다. 국내 제작진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이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거든요. 사운드도 애초에 OTT영화라서 그랬는지 저는 영화관에서 보다가 적어도 3번 정도 소리가 갈라지게 들렸습니다. OTT라는 플랫폼에서 최적화된 스펙과 영화관에서 보여주기 위한 스펙은 다를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쓰다보니 날밤을 새고 이어질 것 같네요. 지난번 ‘동경의 황혼’ 레터 보내고 절친에게 “너 요즘 레터 너무 길어”라고 지적을 받은지라, 오늘은 화급하게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전,란’에 대해 아쉬운 점 위주로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집에서 넷플로 보시기엔 괜찮으실 수 있다는 점 말씀드리고 마무리할게요. 단, 팔다리 신체 절단 장면이 과하게 많으니(19금입니다) 그런 장면 싫어하시면 잠시 손으로 화면 가렸다가, 박정민 목소리 들리면 다시 얼른 화면으로 돌아와 재밌게 보시길.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뵐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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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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