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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유럽 주식 투자를 꺼리는 이유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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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유럽, 투자해도 될까?
해외 투자할 땐 '총요소생산성' 중요 척도
1990년 이후 한국 127.4%, PIGS는 10%
중국은 지난 시간 생산성 빠르게 향상
유럽 기업의 수익성 악화는 에너지 위기 탓
유럽 국가의 일관되지 못한 전략 탓도
"앞으로도 유럽 주식은 보수적 태도 유지"

편집자주

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2주에 1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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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로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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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본, 중국 등 다양한 국가에 분산 투자하는 투자회사를 경영하다 보니 최근 중국 증시의 급등으로 예상치 못한 수익 개선을 경험하고 있다. 지난 1년 7개월 동안 "왜 중국 주식에 투자하면서 유럽에는 투자하지 않느냐"는 항의를 끊임없이 받아 왔던 만큼 오랜만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떤 기준으로 투자 대상 국가를 고르는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기인 것 같아 오늘은 이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① 해외에 투자할 때, 어떤 지표를 봐야 하나?


필자가 투자 대상 국가를 고를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경쟁력'이다. 경쟁력을 측정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필자는 총요소생산성이라는 척도를 주로 사용한다. 총요소생산성이란 노동력이나 자본 투입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생산 효율의 개선 여부를 측정한 것이다. 즉 같은 기계와 사람을 사용했음에도 1년 전에 비해 더 많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이 회사는 경쟁사를 앞설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총요소생산성이 꾸준히 개선되는 나라에 투자해야 한다.

반대로 어떤 나라가 동일한 노동자와 설비를 사용하면서도 1년 전보다 더 낮은 품질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그 나라를 찾는 사람은 줄어들고 기업들의 수익성도 악화될 것이다. 물론 정부가 환율을 조정해 기업들의 경쟁력을 유지시킬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나라의 경제가 반드시 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나라의 주식에 투자한 해외 투자자들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주식 투자 시 환율 변동에 대비하는 조치를 취하는 투자자는 많지 않기 때문에 그 나라 화폐가치가 하락하면 발생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유럽의 총요소생산성 향상률이 얼마나 낮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진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아래 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측정한 국가별 총요소생산성 변화를 보여준다. 이 자료는 OECD 회원국들이 발표한 경제성장률 통계를 분석해 만든 것이며, 현재 2022년까지의 통계가 제공되고 있음을 감안하여 살펴보자.

1990년 이후 33년 동안 한국의 총요소생산성은 127.4% 개선된 반면, 그리스는 마이너스(–)3.4%, 이탈리아는 +2.7%, 스페인은 +4.1%, 벨기에는 +8.4%, 프랑스는 +10.0%를 기록했다. 2010년을 기점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이른바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앞 글자를 딴 약어) 재정위기가 발생한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국가의 경쟁력이 지속적으로 약화됐음에도 유로라는 단일 통화를 사용하다 보니 환율 조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결국 국가 부도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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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신동준 기자


② 중국은 어떤가?


이 대목에서 "중국은 어떤가?"라는 의문을 가진 이들이 있을 것이다. 중국은 아직 OECD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기관에서 작성한 통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중국 당국이 경제성장률 통계를 자의적으로 수정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므로 이를 참고 자료 정도로만 받아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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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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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번째 표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측정한 주요국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보여준다. 이 지표는 '자본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투입된 노동력당 산출물의 양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측정한다. 따라서 '제조 2025'와 같은 다양한 산업 정책을 펼치는 중국의 경우, 생산성 향상이 과대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5년 동안 중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게 생산성을 향상시켜 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생산성 향상 덕분에 중국 기업의 경쟁력이 개선됐고, 이는 세계 시장 점유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인도 스마트폰 시장만 보더라도 오포, 샤오미 등 중국 브랜드가 49%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2023년 1분기 20%였던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2024년 2분기 17%로 떨어지며 3위로 밀려났다. 생산성 향상을 주도하는 한국의 삼성전자마저 중국 기업들에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는 것을 보면 중국의 생산성 향상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다.

물론 기업들이 돈을 잘 번다고 해서 주가가 반드시 오르는 것은 아니다. 2020년 여름, 마윈이 중국 금융 시스템을 비판한 이후 앤트그룹의 상장이 중단되고 경영권 박탈 사태가 벌어진 것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 최고의 부자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나라에 투자하려는 사람을 찾기 어려워졌고, 이는 홍콩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5배 수준까지 하락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기업의 곳간이 풍부하다면 작은 변화만으로도 투자자들의 기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최근 중국 증시의 급등이 단순히 '버블'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③ 유럽은 어떻게 하다 경쟁력을 잃어버렸나?


반면 유럽은 이 부분에서 큰 기대를 하기가 어렵다. 아래 표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유럽 지수(파란색)와 주당 순자산가치(점선)의 관계를 보여준다. '1X'는 주가가 순자산가치와 동일한 수준에서 거래되는 것을 의미하고 '2X'는 주가가 순자산가치의 두 배로 거래되는 것을 말한다. 유럽의 주가 지수가 올해 2X 밴드에 가까워지는 건 주가가 순자산가치의 약 두배에 해당하는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유럽 주식 가격이 역사적인 평균에 비해 특별히 저평가돼 있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20세기에 접어들어 유럽 주요 기업들의 주가가 제자리걸음을 했음에도, 주가를 순자산가치에 비교한 PBR이 역사적 평균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기업들의 자산 성장이 ‘0’이었음을 시사한다. 물론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다 보니 주당 순자산가치가 크게 증가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이 상태라면 미래에도 배당금이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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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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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에너지 위기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탈원전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심각한 에너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비싼 전기요금을 감당하며 사업을 이어가야 하는 유럽 기업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에너지 부족 사태는 최근 유럽 증시 부진의 원인일 수는 있어도 지난 30년 넘게 경쟁력이 약화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전 총재 마리오 드라기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 '유럽 경쟁력의 미래'에서 유럽 국가들이 통합적이고 일관된 전략을 갖추지 못한 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유럽의 전략 부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최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부과를 둘러싼 논란이다. 중국은 최근까지 유럽 자동차 브랜드에 가장 중요한 시장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자동차 산업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유럽 브랜드의 시장 점유율은 급격히 하락했다. 심지어 비야디(BYD)와 지리자동차 등 중국 브랜드의 유럽 시장 점유율이 3년 만에 20%로 높아지자 유럽 위원회(EC)는 '중국 정부의 과도한 보조금 지급'을 이유로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45.3%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문제는 독일의 태도다. 독일은 여전히 중국 시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부과에 반대하고 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독일 자동차 회사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분열이 일상화되다 보니 어떤 정책이 꾸준히 집행되기 어려워진다. 마리오 드라기 전 총재는 유럽 자본시장을 통합하고 미래 성장산업 신생 기업에 자금을 대규모로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 등 극단적인 정치세력의 집권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어떤 상대(외국인 혹은 적대적인 국가)를 악마화하는 데에는 능숙하지만 그 이상을 넘어서는 정책 플랜을 결여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트럼프 정부 1기를 돌이켜 보아도 반중국 및 반이민 정책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정책 노선을 발견하기 힘들다.

따라서 앞으로도 유럽 주식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 물론 만에 하나 드라기 전 총재의 대안이 현실화된다면 필자는 기꺼운 마음으로 반성문을 써 올릴 것임을 약속한다.

한국일보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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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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