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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작별하지 않는다’ 불어 번역 최경란 “‘드디어 그들도 깨우쳤구나’ 생각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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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최경란 번역가. 연합뉴스


“처음 수상 소식을 접했을 때 바로 느낌이 오지 않았어요. 뭔가 비현실적 공간에 붕 떠 있는 것 같았죠. 그러다 곧 ‘드디어 그들도 깨우쳤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형용할 수 없는 기쁨에 휩싸였습니다. 어찌 보면 노벨상 수상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어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번역가 최경란(61)이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54)의 최신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지난해 불어권에 소개한 이다. 그와 공역한 피에르 비지우는 수상 소식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2023년 11월 이 작품이 메디치상 외국문학상을 받을 때만 해도 상상 못 한 풍경이다.



영국 부커상·프랑스 메디치상의 외국문학 부문(번역작품)을 모두 받은 비영어권 작가는 한강(54)이 유일하다. 영역 ‘채식주의자’(2015)로 이듬해 부커상을 받는 데 기여한 이가 영국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37)라면, 불역 ‘작별하지 않는다’로 메디치상에 기여한 이가 최경란이다. ‘현지화·창조성 번역’이 데버라 스미스의 방식이었다면, “원문에 가까운 번역”이 최경란의 방식이다.



지난 11~12일 이틀에 걸쳐 최 번역가와 이메일 인터뷰했다. 노벨 문학상 발표 따라 최 번역가에게도 “사방에서 쓰나미처럼 연락이 몰려오는” 와중이었다.



프랑스는 국외 문학에 인색한 편이다. 취향도 취향이지만 밑자락 자부심이다. 국내 대학 졸업 뒤 프랑스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번역에 종사한 지 30년이 넘은 그가 보기에 변화는 오래되지 않았다. 최 번역가는 한류와 함께 최근에야 “한국문학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도 상당히 줄었다”며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한다. 2017년 불역된 한강 소설 ‘희랍어 시간’은 같은 상 입후보에서 멈췄다. “데카당스에 빠진 기존 문학상”을 비판하며 1958년 신설된 메디치상은 공쿠르상, 페미나상, 르노도상과 묶이는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가장 젊다. ‘작별하지 않는다’ 불어판은 지난해 8월 출간(출판사 그라세) 이후 노벨 문학상 직전까지 1만3천부가량 판매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서점마다 책이 동나 몸살이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작품을 번역하는 데 무엇이 어려웠습니까.



“문학작품 경우, 번역의 난도나 고충은 작품이 가지는 매력에 좌우되는 것 같아요. 좋은 작품일 땐 번역의 몰입감과 그 즐거움이 커서 작업 속도도 빨라지고, 어려움도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이 작품을 번역한 시간은 축복 같은 시간이었어요.”



난관이 없단 얘긴 아니다. 제목조차 직역을 허락지 않고, 한국 방언은 “잊어야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작중 제주 4·3 피해자들의 제주말이 견뎌내는 비감으로 휘몰아친다. 프랑스 마르세유 방언으로 옮기면 될까. 말의 역사, 말의 정동이 다르다. 바뀐 언어의 의미와 맥락으로 바뀌기 전의 언어가 구원되길 요망할 수밖에 없다.



―제목은 어땠습니까.



“프랑스어법상 문장은 주어를 반드시 명기해야 해요. 그럼 ‘나는’ ‘우리는’ ‘누군가’는 ‘작별하지 않는다’가 될 텐데, 어설퍼집니다. 프랑스어로 가장 자연스럽고, 한국어 원문과 가장 가까운 표현을 찾은 끝에 ‘미완성 작별’, ‘불가능한 작별’ 등을 제시했는데 결국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로 의견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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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최신 장편 ‘작별하지 않는다’의 2023년 프랑스 번역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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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54)이 그달 14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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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지적’ 비극은 전달이 될까. 메디치상 수상 직후인 지난해 11월 작가 한강은 기자들에게 “프랑스 독자들에게 제주의 역사적 사건에 추가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최 번역가는 말했다.



“소설의 배경과 맥락은 한국적이나 ‘인간의 폭력성’은 보편적으로 자행되어 왔습니다. 따지고 보면 산업혁명 이후 서구 역사야말로 ‘인간 폭력성’의 종합세트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배경과 맥락은 다르지만 서구인들에게 충분히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물론이다. ‘작별하지 않는다’와 짝을 이루는 광주 5·18 배경의 장편 ‘소년이 온다’를 두고 한림원은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통해 ‘증언 문학’이라는 장르에 접근한다”고 평가했다. 올 3월 ‘불가능한 작별’은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을 받으며 “우정과 상상력에 대한 찬가이며, 무엇보다 망각에 대한 강력한 고발”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한강의 작품은 전세계 28개 언어권에서 80종 넘는 단행본으로 독자와 만나고 있다. 프랑스만도 2011년 ‘한국 여성문학 단편선’, 2014년 단독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이후 여러 작품이 소개되어왔다. 내년 3월엔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Soirs rangés dans mon tiroir)도 불역 출간(최미경·장 노엘 주테 공역)된다. 여기 결부된 번역가를 이 기사는 짧아 다 기록하지 못한다.



―프랑스 문학상 이력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작별하지 않는다’의 역자일 뿐입니다. 여러 작품이 또 다른 번역자의 작업으로 프랑스에서 출간됐어요. 더욱이 2016년 영국에서는 ‘채식주의자’가 부커상을 받았고, 각국 수많은 번역가의 노력이 작가를 전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시기상 보면 메디치상 수상 후 올해 노벨상 수상에 이르러, 어느 정도 무게를 실어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오랜 기간 많은 언어권 역자들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라고 봅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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