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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연설로 보니… ‘감성 호소인’ 해리스, ‘분노 유발자’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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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두 후보 녹취록 76건 분석

조선일보

그래픽=김하경


“우리는 미래와 자유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 자유로운 결정을 내릴 자유 등 근본적인 자유 말입니다.”(7일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미시간주 유세)

“미국은 지옥이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내가 출마했습니다.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입니다.”(10일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펜실베이니아주 유세)

오는 11월 5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민주당 후보 해리스와 공화당 후보 트럼프가 미 전역을 돌며 막바지 표심(票心)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해리스는 트럼프가 여성의 낙태권 등을 제약해 자유를 구속한다고 비난하고,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해결하지 못하는 해리스와 민주당의 무능을 공격하고 있다. 인도·흑인계 여성이자 검사 출신인 60세 해리스와 부동산 사업가 출신의 78세 백인 남성 트럼프는 성장사와 경력만큼이나, 사용하는 수사와 화법도 큰 차이가 난다. 본지는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후 두 후보가 연설·인터뷰 등 공식 석상(해리스 21건, 트럼프 55건)에서 한 발언의 녹취를 모은 후 컴퓨터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자주 쓰는 단어·문구를 집계했다. 분석 결과 해리스는 평범한 중산층을 겨냥해 감성에 호소하는 반면 트럼프는 현 정부의 실정(失政)을 비난하며 유권자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두 후보가 공통으로 많이 사용한 국민(people)·미국(America)·조국(country) 등의 단어를 제외하고 해리스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자유(freedom)’였다. 21번 연설에서 128회나 이 단어가 나왔다. 공화당과 트럼프가 낙태를 제한하거나 동성애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등 미국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는 맥락으로 자주 언급했다.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해 지지자들이 폭력 시위를 벌였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트럼프가 자유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는 발언도 종종 한다. 지난달 23일 위스콘신주 유세에서 “우리는 미 전역에서 투표할 자유, 총기 폭력에서 안전할 자유, 노조에 가입할 자유, 공개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밝힐 자유 등 어렵게 쟁취한 기본적 권리와 자유에 대한 (공화당의) 전면적인 공격을 목격하고 있습니다”라고 한 발언이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해리스는 또 따뜻하고 희망적이지만, 다소 추상적인 단어들을 많이 썼다. 미래(future·80회), 기회(opportunity ·75회), 함께(together·68회) 등은 트럼프 연설에선 거의 나오지 않는 단어들이다.

트럼프가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위대한(great·333회)’이었다. 대표 구호인 매가(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등장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이 외에도 큰(big·153회), 가장 위대한(greatest·53회) 등 과시적인 말을 즐겨 썼다. 트럼프의 또 다른 특징은 부정적 의미의 단어를 유난히 많이 쓴다는 것이다. 전혀 ‘없다’ ‘아니다’ ‘안 했다’ 등의 맥락으로 쓰이는 단어 ‘네버(never)’는 257번이나 썼다. 지난달 9일 위스콘신 유세 때는 ‘네버’가 44번이나 나왔는데, 자신의 잘못이 ‘절대 없다’거나 해리스와 민주당이 할 일을 ‘전혀 안 했다’는 등의 이야기에 두루 동원됐다.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절대 없었을 것” “트럼프는 절대 틀리지 않는다” 등의 표현이 연설 내내 이어졌다. 사기꾼(crooked·87회), 끔찍한(horrible·61회), 지옥(hell·61회) 등 노골적인 적대감을 담은 단어도 빈도가 높았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유세는 분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전했다.

단어 사용 빈도를 보면 각 후보가 차별화된 강점을 보인다고 미는 정책이 확연히 갈렸다. 해리스는 연설에서 이번 대선의 결정적 변수로 여겨지는 낙태권 문제를 자주 언급했다. 낙태(abortion)를 33회, 몸(body)은 21회를 썼다. ‘나의 몸, 나의 선택’은 낙태권 옹호론자들이 많이 쓰는 구호다. 트럼프가 대통령 시절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주도해 2022년 대법원은 연방 차원에서 낙태권을 보호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했고, 이에 대한 여성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 이번 대선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트럼프는 낙태라는 단어를 단 한 차례도 쓰지 않았다.

반면 트럼프는 바이든 정부의 외교 실정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강점이라고 여기는 강력한 국경 통제를 시사하는 발언을 많이 했다. 전쟁(war)을 95회 쓰면서, 중국(150회)·러시아(75회)·이란(44회) 등 적성국을 자주 언급했다. 이민자 문제로 외교적 마찰을 빚는 멕시코(46회)도 국경(border·104회)과 함께 자주 거론됐다. 반면 해리스는 중국은 15번, 러시아·이란·멕시코는 각각 4~6번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종곤 이화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해리스는 다른 국가를 지목하는 대신 경제(economy·117회)란 단어를 자주 활용하는데, 현 부통령으로서 (전쟁 등으로 고전하는) 국제 관계보다는 국내 정책이나 경제 성과에 집중하는 느낌이 강하다. 반면 트럼프는 국제 관계에 더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트럼프는 또 에너지(energy·72회)·석유(oil·56회)·시추(drill·38회) 등의 단어들을 사용하며 미 국내 화석 에너지원의 적극적인 활용을 주장했다. 민주당의 친환경 기조와 차별화하려는 전략이다.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석유와 가스 매장량이 더 많지만, 베네수엘라에서 저품질의 석유를 수입하는 데 터무니없는 돈을 지불한다(지난 8월 19일 펜실베이니아주 연설)”라는 식이다. 셰일가스·오일 추출에 쓰이는 공법인 ‘프래킹(fracking·수압파쇄)’을 둔 공방은 가장 뜨거운 대선 이슈이기도 하다. 프래킹이 환경을 오염한다며 반대하던 해리스가 최근 경합주이자 셰일가스 관련 종사자가 많은 펜실베이니아의 표심을 의식해 ‘금지하지 않겠다’며 말을 바꾸자, 트럼프는 “해리스는 거짓말쟁이”라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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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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