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스웨덴 한림원과 인터뷰
한국 작가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목소리는 단정하면서도 간결했다. 10일(현지 시각) 스웨덴 한림원의 발표 이후 노벨위원회가 인터넷과 유튜브에 공개한 7분 30초 분량의 전화 인터뷰에서 한강은 “(책을) 읽고, 걷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편안한 일상(easy day)에 찾아온 놀라움”이라고 차분하게 영어로 소감을 밝혔다. 작가는 “놀랐다(surprised)”라는 단어를 다섯 번이나 말했지만, 격한 흥분이나 호들갑스러움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한강 작가는 “나는 어릴 적부터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는 말로 한국 문학 독자들과 동료 작가들에게 공을 돌렸다.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은 삶에서 의미를 찾는 여정이었다. 때로는 길을 잃기도, 때로는 결연하기도 한 이 모든 작가들의 노력과 힘이 나에게 모든 영감의 원천이었다.”
한승원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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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축배를 들지도, 잔치를 열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축하하겠냐’는 한림원의 물음에 한강은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아들과 함께 조용히 차를 마시며 축하하고 싶다”고 했다. 이틑날인 11일 아버지 한승원 작가를 통해선 좀 더 자세한 사정이 알려졌다. 한승원 작가는 “상을 준 건 즐기라는 게 아니라 더 냉철해지라는 것”이라는 딸의 말을 전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으로 전 세계가 침통한 데 무슨 잔치를 하느냐’며 수상 관련 기자회견은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책 속에 파묻혀 자라는 딸의 모습을 지켜봐온 아버지 한승원 작가는 자신의 집필실이 있는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해산 토굴’ 앞 정자로 찾아온 기자들에게 “우리가 살았을 때 (노벨문학상을) 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빠른 소식에 놀랐다”면서 “한림원이 ‘사고 친 것’”이라고 했다. 그 자신 ‘해변의 길손’,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의 작품을 쓰며 노벨상 작가를 키워낸 소설가 아버지는 ‘승어부’(勝於父·아버지를 뛰어넘은 자식)라면서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의 작가가 된 한강”이라고 했다.
그는 딸의 작품이 노벨상을 수상한 이유에 대해 “(한국의) 비극을 정서적으로 그윽하고 아름답고 슬프게 표현한”게 통한 거 같다”면서 “시적인 감수성을 지닌 젊은 작가”라고 했다. 그는 5·18을 다룬 딸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2014)를 예로 들며, “고발 소설이 아닌, 인간의 아픔, 비극을 서정적으로 아름답게 다뤘다는 점에 노벨 위원회가 높이 평가한 것 같다”고 했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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