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0 (목)

학부모 등쌀 못이겨… 담임 관두는 교사 3년새 2배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난해 124명 스스로 물러나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3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 2학년 담임 교사였던 민지영(가명·30)씨는 수업 중 딴짓하는 A양에게 “OO이는 한눈팔지 말고 칠판을 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A양이 집중을 안 하자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교과서 한 대목을 소리 내어 읽게 했다.

이 사실을 안 A양 부모는 민씨를 아동 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다. 자녀에게 수치심을 줬다는 이유였다. 한 달간 조사 끝에 무혐의 처분이 났지만, 부모는 교육청에 다시 민원을 넣었다. 그 과정에서 “너 같은 게 무슨 담임이냐, 선생 그만둬라” 등의 폭언과 삿대질을 당한 민씨는 우울감이 심해져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해 2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다른 교사로 담임을 대체해 달라고 학교에 요청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스스로 담임을 그만두는 교사가 갈수록 늘고 있다. 9일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국공립 교원 담임 교체 현황’에 따르면, 교사 본인이 원해서 학년 중간에 담임이 바뀌는 경우가 최근 3년 새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2020년 54명을 시작으로, 2021년 90명, 2022년 118명, 지난해 124명이 스스로 담임을 관뒀다. 이어 올 들어 7월까지 담임 교사 55명이 자진해 교체됐다. 학부모 요청으로 담임 자리에서 물러난 교사도 2020년 17명에서 지난해 79명으로 늘었다. 이렇게 작년 한 해에만 전국 초·중·고교에서 교체된 담임 수가 도합 203명이다. 2022년(206명)에 이어 2년 연속 200명을 넘었다. 2020년(71명)과 비교하면 3배 수준이다.

지난해 담임 교체는 대부분 초등학교에서 발생했다. 교체된 담임 61%(125명)가 초등 교사였다. 중학교는 18%(36명), 고등학교는 21%(42명)였다. 학교에서는 담임이 바뀔 때 인사자문위원회에서 논의해 기간제 교사를 새로 뽑거나 교과 전담 교사에게 맡기기도 한다. 중학교의 경우엔 해당 학급 부담임이나 그 반에서 교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등을 후보에 놓고 의논한다.

교원 단체는 교권 침해 등에 따른 교사들 의욕 상실을 담임 교체 증가 원인으로 지목한다. 업무 부담은 큰데 담임 수당은 적고, 학부모가 학생 생활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래 교사들, 특히 담임을 거의 필수적으로 맡는 초등 교사들 사이에서 담임 교사가 된다는 건 학생 수십 명의 학업 및 생활 태도, 가치관 형성 전반을 이끌고 돌본다는 책임이 수반돼 자부심으로 여겨졌다. 34년째 근무 중인 50대 초등 교사 이모씨는 “초임 교사 시절만 해도 교내 사정 등으로 담임을 못 맡으면 속이 상해 온종일 울었다”면서 “하지만 요즘 교사들은 담임을 서로 안 맡으려고 난리”라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23년 차 초등 교사 한모씨는 “숙제를 안 해온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에 숙제를 시키면서 ‘애들 휴식 시간을 빼앗아 과제를 억지로 시켰다고 아동 학대 신고를 당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에 시달린다”고 했다. 교실 뒤편에서 말다툼하는 여학생들에게 담임 교사가 교실 앞쪽에서 “착한 사람은 친구와 다투지 않습니다”라고 반복해 외친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 가까이서 싸움을 말리거나 혼내면 아동 학대 신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초등학교 교사 B씨는 “학생 인사를 제대로 안 받아줬다”며 아동 학대 혐의로 경찰에 신고당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학부모가 직접 교사에게 폭언·폭행할 수 없도록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민원을 전담 처리하는 중간 단계를 마련해 교사를 보호하는 방안을 우선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경은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