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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이대화의 함께 들어요] 가사가 아름다운 우리말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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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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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소라의 말대로다. 이별한 친구의 하소연을 한껏 들어주던 친구들이 집으로 가는 길에 그들끼리 한마디 한다. ‘저쪽 얘기도 들어 봐야지.’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이 너에겐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너에겐 추억으로 남았을지 몰라도 나에겐 지루한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소라는 덧붙인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역시 이소라 말대로다. 서러움을 더욱 서럽게 만드는 것은 세상이 나만 빼고 어제와 똑같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인이 될수록 그 체감은 높아진다. 어렸을 땐 작은 상처에도 주변에서 관심을 보인다. 어른이 되면 알아서 잘 이겨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프고 힘든 건 똑같다. 성숙해진다고 고통의 체감이 둔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 처음 들었을 때는 “하늘이 젖는다” 부분을 좋아했다. 비가 온다는 얘기지만 실은 눈물이 흐르는 상황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A를 A라 말하지 않고 B라고 말하면 세련되어진다고 배웠다. 생각해 보니 “이별” 같은 직접적인 표현은 곡의 후반부에나 등장했다. 처음엔 그저 “바람이 분다”로 시작한다.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라고 표현한 데에선 섬세함이 느껴진다. 이제야 알 것 같다는 말 속에는 그때는 알아채지 못했다는 맥락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사랑은 냉담한 남자와 열렬히 사랑한 여자의 평행선을 달리는 짝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상상하며 듣는 재미가 있다.

‘바람이 분다’는 2014년에 한글날을 맞아 시인 1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노랫말이 아름다운 뮤지션’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 요조의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가 공동 1위였다. 시인으로 한정하지 않고 음악 전문가와 문인까지 범위가 넓었던 2011년 한글날 리스트에서도 ‘바람이 분다’는 1위를 차지했다. 모두 2000년대 이후 발표된 곡들을 기준으로 했고 설문 대상자가 많지 않았다는 한계는 있지만 두 번씩이나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우리 대중가요를 대표하는 가사 중 하나라는 얘기일 것이다. 게다가 이런 리스트는 소수가 뽑았을지언정 영향력을 발휘한다. 앞으로 발표되는 가사 관련 리스트에는 ‘바람이 분다’가 첫 번째로 후보에 오르는 곡이 될 것이다.

어제는 한글날이었다. 가을 초입에 들어선 것도 그렇고 가사가 아름다운 우리말 음악에 푹 빠져 보기 좋은 시점이다. 문인들도 인정한 가사이자 한 편의 시 같은 깊이와 여운을 가진 ‘바람이 분다’는 어떨까.

이소라 -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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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화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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