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한 영업장의 영어 간판/사진=이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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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데… 영어 간판이 너무 많네요."
제578돌 한글날 하루 전인 지난 8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을 찾은 미국인 플린씨(35)는 "한글로 가득찬 한국 거리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머니투데이 취재진이 서울 연남동과 용리단길(지하철 숙대입구역~남영역~삼각지역~신용산역 일대) 등 번화가를 돌아본 결과 한글 간판은 10곳 중 1곳도 찾기 쉽지 않았다. 영어 등 외국문자로만 표기된 가게 간판이 대다수였고 한글이 병기된 간판도 거의 없었다.
8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한 영업장의 영어 간판/사진=이혜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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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의 한 대형 카페는 외벽에 걸어둔 소개글부터 영문밖에 없었다. 메뉴 설명, 영업시간 소개도 전부 영어였다. 이 일대 영업장 12곳 모두 영어, 한자, 태국어, 베트남어 문자가 적힌 간판을 내걸었다.
외국인들마저 거리를 가득 메운 외국문자 간판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미국인 포어커씨(35)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글 간판이나 차림표가 많으면 배우기 좋을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모씨(57)는 "외국에선 점점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한국에선 외국어를 너무 많이 쓰니까 오히려 공부하러 와서 실망할 것 같다"고 말했다.
8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식당의 한자 간판/사진=김호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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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리단길도 상황은 비슷했다. 점심 식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는 길목에서 몇몇 행인은 어려운 외국 문자 간판에 곤혹스러워했다. 어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러 나온 이선영씨(35)는 "분명히 한국 가게를 갔는데 메뉴가 뭔지 몰랐던 적이 있다"며 "아예 외국어로만 적혀있어서 점원이 설명해준 다음에야 태국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이씨는 "관광지에는 이왕이면 한국적인 게 많았으면 좋겠다"며 "우리나라면 간판은 한글로 적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모씨(67)는 "이 근처엔 외국어 간판이 많아 한국 같지가 않다"며 "한국다운 게 많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간판 7795개 중 외국문자만 적힌 간판은 21.2%인 1651개였다. 한글과 외국문자를 병기한 간판은 18.6%에 불과한 1450개였다.
간판에 외국문자만 쓰는 것을 규제하는 법은 이미 시행 중이다. 현행 옥외광고물법 시행령 제12조 2항은 간판 문자는 한글로 표시해야 하고 외국문자를 쓰더라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을 함께 써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런 시행령에 불구하고 외국문자 간판이 거리를 덮은 건 지방자치단체 신고·허가가 필요 없는 항목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업체의 외국어 상표나 5㎡ 이하 크기의 간판은 별다른 허가 절차 없이 설치할 수 있다.
한글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선 법의 취지를 살리면서 우리말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 같이 진행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임동훈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외국문자 간판 난립은 사회 풍조가 반영된 현상 중 하나일 뿐"이라며 "외국어로 쓰면 고급으로 보여 사업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일텐데 간판마 규제하기보다 한글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게 우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이혜수 기자 esc@mt.co.kr 김호빈 기자 hob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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