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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재생농업, 탄소감축 효과…탄소크레딧 등 정책적 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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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상훈(65) 60+ 기후행동 공동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 3층 회의실에서 재생농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정봉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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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농업’이야말로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하늘의 명을 따르는’ 농사법이에요.”



노년 기후행동단체 ‘60+기후행동’의 공동대표 한상훈(65)씨는 현재 농사를 지으며 필요한 작물을 자급하며 살고 있다. 40여년 교사로서 일해오다, 2005년 늘 염원하던 농촌에서의 삶을 찾아 충북 충주시 산척면의 작은 마을로 ‘귀촌’했다. 그 뒤 농부로서 갈고닦아온 일이란, 역설적이게도 “땅을 안 갈고(무경운), 비료를 안 뿌리고(무투입), 잡초를 제거하지 않는(무제초)” 것이라 했다. ‘3무 농법’이라고도 불리는, 이른바 ‘재생농업’이다.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만난 그의 목소리는 ‘재생농업’ 이야기에 한껏 활기를 띠었다.



처음엔 991㎡(300평) 정도 땅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텃밭치고는 넓은 면적이지만 여러 해 서울 근교에서 지인들과 넓은 규모의 땅을 경작한 경험이 있어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커져가는 욕심에 땅을 3305㎡(1000평)까지 늘렸더니 농사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했단다. ‘몸이 감당할 수 있으면서 자연의 흐름을 해치지 않는 농사법’을 고민하다 만나게 된 게 바로 재생농업이다.



토양 속엔 수많은 곰팡이균들이 서식하는데,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유기물의 형태로 변환한 후 뿌리로 방출하면 곰팡이균들은 이를 에너지원으로 삼고 식물의 뿌리가 토양 속 영양분을 흡수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인간의 개입 없이도 둘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이 과정에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토양 속에 저장된다. 그러나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 인간은 거대한 트랙터로 땅을 갈아엎고 화학물질이 포함된 비료와 농약을 투입하는 농업을 발전시켜왔다. 이런 ‘관행농업’ 아래에선 다양하고 유익한 곰팡이균들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한 대표 설명이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볼록하게 흙을 쌓은 이랑 주위 풀을 자르고, 자른 풀을 이랑 위에 얹는 것뿐이다. 재생농법이 ‘게으름농법’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풀을 완전히 뽑지 않는 것은 광합성을 통한 탄소 저장을 위해서다. 얹어진 풀은 이랑에서 나는 풀들을 견제해 작물이 자라는 데 도움을 준다. 또 썩으며 자연스럽게 퇴비 역할을 한다. “산에서는 낙엽이 썩는 게 쌓여 아름드리나무가 되잖아요. 인간이 퇴비를 주지 않아도 썩은 게 계속 쌓여 거름이 되고 그게 또 쌓이면 그 자체가 영양분이 되는 원리를 그대로 농사에 적용한 게 재생농업이죠.”



한겨레

한상훈(65) 60+ 기후행동 공동대표가 재생농법으로 키우고 있는 배추밭. 한상훈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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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재생농업으로 감자, 고구마, 각종 쌈채, 오이, 호박, 고추, 배추 등 50여 가지의 작물들을 자급한다. 농식품 분야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31%를 차지하는 환경에서(세계은행의 ‘살기 적합한 지구를 위한 레시피 보고서’, 2024), 자연의 힘으로 대기 중 탄소를 땅으로 보내는 재생농업은 기후위기의 해법으로도 주목받는다. 다만 자급농부가 아닌 전업농부에까지 적용하기엔 아직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작물을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기존의 농약 회사, 비료 회사 등과 얽혀 있어 전환하는 게 만만치가 않아요. 재생 농업을 시도하는 농가에 탄소 크레딧을 주는 등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죠.”





40여년 교사로 일한 뒤 2005년 귀촌
자연 흐름 안 해치는 농법 고민하다
풀 안 뽑고, 땅 안 갈아엎는 농사로
풀은 광합성 통해 탄소 저장 구실
회원 20여명과 재생농업 동아리도



교사 시절 20년 환경동아리 운영





농부가 되기 전 그는 누구보다 ‘환경 교육에 진심인 교사’였다. 강원 삼척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자라며 “물에서 노는 걸 특히 좋아했다”던 그는 유년시절부터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키웠다. 대학 시절엔 로마클럽의 ‘성장의 한계’ 보고서를 읽으며 자연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 생물 교사로 일하면서는 ‘환경을 생각하는 교사 모임’(현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 교사 모임’)에서 환경 학습 자료를 공동 개발하고 학생들과 들로 산으로 강으로 체험학습을 다녔다. “지금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더러운 물과 더러운 공기,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서 자랐기 때문에 생태적 감수성 자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20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도시 하천을 탐사하는 환경동아리도 운영했다. 하천의 수질뿐 아니라 제방, 둔치, 물길의 상태 등을 평가해 하천의 자연도를 기록할 수 있는 평가지를 환경교사 모임에서 자체 개발했다. 아이들은 도심 내 하천을 상류부터 쭉 내려오며 어떤 곳이 망가졌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태 감수성을 키울 수 있었다. 아이들 중 환경공학과에 진학하거나 환경단체에서 일하게 돼 연락이 오는 제자들도 생겨났다. 귀촌 뒤에도 2021년 충북 진천군 서전고에서 교장으로 정년퇴임하기 전까지 하천 생태계를 중심으로 한 야외 체험활동 교육을 이어나갔다.



퇴직 뒤 생태전환 교육을 주제로 강의를 다니던 중, 전교조 활동으로 안면이 있던 나승인 60+기후행동 운영위원으로부터 함께 활동하잔 제안을 받았다. ‘노년 기후운동가’가 되어 60+기후행동의 공동대표까지 맡게 된 계기다. 단체에서는 ‘재생농업 동아리’를 만들어, 회원 20여명과 한달에 한번씩 모여 농업 분야 기후 의제를 토론하고 재생농법을 공유하고 작물을 수확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단체가 내놓은, 기후위기에 책임을 지는 노년 세대가 되자는 취지의 ‘신노년 선언’에 발맞춰 “생태적 삶을 실천하자”며 시작한 일이다. “직접 재배한 작물로 간식을 만들어 먹고, 막걸리도 마시고, 끝날 즈음엔 꼭 풍물을 치며 끝내요. 재밌게 하고 있고 인기가 좋은 활동”이라 했다.



그는 “청년 기후단체들이 의미 있는 활동을 많이 하는데, (노년 기후운동가로서) 힘을 보태주는 활동들을 계속할 것”이라 말했다. “사실 노년이라고 지속가능성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기후위기에 더 취약한 게 노년의 삶이에요. 재생농업은 지속가능한 삶을 가능케 한단 점에서 기후위기에 취약한 동시에 기후위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노년의 기후운동가가 할 수 있는 멋진 대안입니다.”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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