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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민주주의가 없다면 기후대응도 없다 [오동재의 파도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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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후소송 헌법소원 선고 전날인 지난 8월28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구인 중 한명인 한제아양이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김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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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재 | 기후솔루션 연구원



비상계엄의 밤, 12월3일에는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뉴스를 보고 놀란 것도 있지만,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을 확인하고 팀에서 계획 중이었던 보도자료와 보고서, 기자회견 일정들을 모두 취소하고 미뤄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한 집회·출판의 자유의 제한과, 이를 위반한 자는 처단한다는 전례 없는 처벌 문구로 공포된 포고령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을 곧장 통과시켰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결국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뒤늦게 해제한 새벽 4시가 훌쩍 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날 팀원들이 몇주간 준비했던 신규 화석연료 사업의 문제점을 다투는 기자회견과 보도자료 배포는 취소됐고, 결국 그날 진행되지 못했다. 계엄이 그날 해제되지 못했다면 이 글마저도 계엄사의 통제를 받았겠다.



내가 배운 헌법은 대통령이 포고령으로 그날 밤 한순간에 앗아간 시민들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싸워온 투쟁의 산물이다. 거대한 국가 권력이 너무 쉽게도 주권자의 기본권을 짓밟아왔기에, 그 힘을 제한해온 역사다. 그렇게 지금의 헌법하에서 권력기구인 3부(행정부, 국회, 법원)의 권한과 책무를 명시해 상호 견제하고 있고, 행정부와 국회 대표자의 권한은 주권자의 직접 투표로 선거를 통해 부여된다. 그렇게 우린 1987년 이후 자유 민주주의를 공고히 발전시켜왔다.



여느 시민사회 단체들이 그렇듯 기후솔루션은 이런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기반을 바탕으로 기후위기를 ‘1.5도 이내’로 막고자 한다. 연구·보고서를 출판하고, 기후위기를 악화하는 정책 결정에 대해 결사·집회·시위를 하기도 한다. 너무 일상화되서 당연한 일이지만, 이 당연한 일들은 사실 ‘우리가 노력해서 권력 기관들이 헌법과 법에 따라 보장된 권한을 활용하게끔 한다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깊은 믿음이 깔려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그렇게 한국은 국제 사회에 기후 정책을 공표하고 발전시켜오지 않았나. 십수년 전, 보수 정부에서 처음 ‘녹색 성장’의 이름으로 기후 정책을 공표하고, 이를 국회에서 법제화했다. 시간이 지나 지난 정부에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고, 21대 국회에선 탄소 중립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동아시아에서 제일 처음으로 신규 석탄 발전에 대한 금융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고, 중국과 일본이 뒤따라오게 만들었다. 지난 8월에는 현행법이 미래세대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에 헌법재판소가 미래 세대의 손을 들어주며, 국회에는 입법 개선 과제를, 정부에는 2031년 이후 감축 목표 설정 과제를 넘겼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날 대통령의 연설을 봤다. 결국은 공직자에 대한 국회의 탄핵과 예산 삭감을 ‘내란을 획책하는 반국가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척결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헌법은 공무원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권과 정부 예산을 심의·확정·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국회에 부여하고 있다. 국회가 탄핵소추를 남발하거나, ‘예산 폭거’를 저지르고 있다면 그 권한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 건 투표로 국회에 그 권한을 맡긴 국민들일 테다. 대통령은 그런 권한을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적 없다. 그렇기에 국회의 권한을 행정부 수반이 앗아가려 했던 이번 비상계엄은 삼권 분립의 심각한 훼손이기도 하다.



이번 비상계엄을 거치며, 지난 몇년 새 국가 권력에 의한 자유(기본권)의 과도한 제한이 이번뿐이었는지 고민한다. 지난 몇년간 어떤 업무를 하더라도 나 스스로 검열하게 하고 결국 포기하게 만든 힘이 결국 우리가 계엄의 밤 목도했던 것과 같은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위협은 결국 기본권의 위협이다. 기본권의 위협은 결국 기후 대응의 위협이다. 우리가 이 싸움에 연대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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