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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국악 한마당

"변화무쌍 국악에 장단 맞추는 발레, 대박날 줄 몰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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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남산 한옥마을에서 만난 조주현 한예종 교수(왼쪽)와 신현식 앙상블시나위 대표.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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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죠?"

첫 반응은 경악이었다.

조선 왕실음악인 수제천에 맞춰 '서양 찐 예술'인 발레를 한다니 다들 어리둥절했다.

한국 전통 음악은 요음이라고 해서 떠는 음, 즉 바이브레이션이 있는데 연주자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길이가 다르다. 그런데 완전 정형화된 발레 안무가 이를 맞출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웬걸. 뜻밖의 조합에 관중은 환호하고 전문가들은 갈채를 보냈다. 올해 3년째 경복궁 집옥재에서 펼쳐지는 고궁음악회 '발레x수제천' 공연 얘기다.

서울의 4대 고궁에서 열리는 '가을 궁중문화축전'의 꽃으로 부상한 이 공연은 오는 10일부터 13일까지 경복궁 집옥재에서 나흘간 열린다. 지난달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동이 났다.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들은 "고궁에서 발레라니 너무 참신하다" "수제천과 판소리, 침향무와 발레, 묘하게 어울린다"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이 공연의 탄생 실화엔 조주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발레전공 교수(52)가 있다. 미국 워싱턴발레단 무용수로 활약하다가 고국에 돌아온 그의 머릿속에 경회루 전각이나 경복궁 근정전 같은 정제된 이미지가 떠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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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경복궁 집옥재에서 펼쳐진 '발레x수제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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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 공연 음악감독 신현식 앙상블시나위 대표(45)와 함께 남산 한옥마을을 찾은 그는 "클래식 발레라는 게 워낙 정형화되고 조형화된 것이어서 조선의 클래식한 건축 양식을 배경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며 "발레는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올라가는 천상의 예술이고 수제천 역시 하늘을 여는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두 장르의 만남은 17세기 조선 클래식과 17세기 유럽 클래식의 운명적인 만남이자 천생연분이라는 것이다. 2019년 한예종에서 초연을 한 뒤 2022년부터 경복궁 무대에서 일반 관람객을 맞이했다. 인기 공연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도 하지 못했다. 3년째 음악감독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신현식 대표는 "처음에 악기 떨림 하나하나에 무용수들의 손 동작을 다 맞춰놓은 것에 너무 놀랐다. 무용수들이 국악의 변화무쌍한 호흡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엄청난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연단은 한예종 무용단인 K-Arts 단원 65명과 음악 연주자 등 100명에 이른다. 공연이 열리는 집옥재는 고종의 서재로 쓰인 곳으로 현재 청와대 정문과 마주하고 있다.

"작품은 크게 3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종묘제례악의 영신에 맞춰 1장이 시작됩니다. 무용수들은 왕실 문화의 상징인 금색 옷을 입고 나오죠. 2장에선 판소리에 맞춰 어린 요정과 도깨비들이 한바탕 난장을 펼칩니다. 3장은 생황과 단소의 수룡음에 맞춰 봉황을 상징하는 무용수가 독무를 추죠."

조 교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신 대표는 "최근 유럽에 3주 공연을 보고 왔는데, K컬처 열풍이 얼마나 거센지 체감했다"며 "이 공연을 세계 어디에나 갖다놓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무대를 더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국악은 비보이, 힙합과도 만나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신 대표는 "단순히 이것저것 섞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며 "호흡이 중요하다. 장르가 유기적으로 만나 동시대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연은 가을밤 고궁 앞마당에서 펼쳐지기에 습기를 비롯한 변수가 적지 않다. 조 교수는 "무용수들이 다치지 않게 무대 바닥에 물에 젖은 부직포를 까는 등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며 "공연은 마법이 돼야 한다. 관람객들을 그 공간으로 순식간에 빠져들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대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태평성대를 바라는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했죠. 음악과 미술, 춤이라는 종합예술을 통해 힘든 일상이지만 조금 더 힘을 내보자고 다독이고 싶어요."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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