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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칼 쓰듯” 탈원전 감사한 유병호, 윤 대통령 관저 감사는 뭉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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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17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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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문객잔의 주방장이 칼 써(쓰)듯이 조사하소… 다다다다다…!”



2023년 10월26일 감사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에게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물었다. 유병호가 작성한 ‘공감노트’라는 일종의 업무지침에 나오는 말이었다. ‘신용문객잔’은 1992년 개봉한 홍콩 무협영화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방장은 인육으로 만두를 만든다. 영화에는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 김 의원이 “정말 이렇게 감사하라는 뜻인가”라고 묻자, 유병호는 “다른 아름다운 표현도 많은데, 하필 그 부문만 말씀하니 섭섭하다”라고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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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장 칼 쓰듯” 탈원전 2차 감사 주도한 유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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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개봉한 홍콩 무협영화 ‘신용문객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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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호는 감사원을 윤석열 정권의 돌격대로 만든 인물로 꼽힌다. 윤 정권 출범과 함께 사무총장에 발탁된 그는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등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표적 감사를 주도했다. 그로 인해 감사원은 개원 이래 처음으로 수사기관(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압수수색을 당하는 치욕을 겪었다. 공수처는 전 위원장을 검찰에 무고한 혐의 등으로 유병호를 수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그를 감사위원으로 영전시켰다. 앞서 사무총장에 임명할 때도 두 직급이나 승진시킨 파격적 인사였다. 유병호의 ‘주방장 칼 쓰듯’하는 감사 스타일이, 자신의 ‘표범이 노루 사냥하듯’(2013년 10월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이 ‘국정원 댓글’ 수사 외압을 폭로하면서 한 말) 수사하는 스타일과 통한다고 본 걸까.



윤 대통령보다 먼저 유병호의 돌격대 기질을 활용한 이가 바로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다. 최재형은 2020년 4·15 총선 직후 열린 감사위원회에서 ‘탈원전’ 감사를 재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앞서 감사위원회에서 퇴짜를 맞았던 감사를 다시 하겠다는 것이다. 감사위원들을 더욱 황당하게 한 건 유병호에게 이를 맡긴 것이다. 당시 유병호는 한직인 심의실장을 맡고 있었다. 지방행정감사1국장 때 각종 무리한 감사로 구설에 올라 비감사부서로 밀려난 상태였다. 이 인사를 결재한 인사권자는 최재형이었다. 자기가 좌천시켰던 문제적 인물을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발탁해 탈원전 2차 감사를 맡긴 것이다.



최재형은 인사 당일 유병호를 비롯한 간부들을 모아 놓고 난데없이 사냥개 얘기를 꺼냈다. 그는 “감사관 한 사람 한 사람이 감사관으로서의 야성을 가져야 한다. 원장인 내가 사냥개처럼 달려들려 하고 여러분이 뒤에서 줄을 잡고있는 모습이 돼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앞서 1차 감사를 담당했던 감사관들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최재형이 ‘문제적 인물’ 유병호 발탁한 이유는?





유병호는 최재형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감사를 요청한 야당(자유한국당)의 의도에 맞게 문재인 정권의 월성원전 1호기 폐쇄를 불법 행위로 전제하고 감사를 진행했다. 2차 감사가 막 시작된 2020년 5월22일 유병호가 작성한 공감노트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직접 또는 부하직원들을 통해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과 한수원 관계자들을 압박하여 즉시 가동 중지를 관철시키고, 정 등 한수원 관계자는 직권남용의 상대방이기도 하고, 이사들을 적극적으로 기망해 즉시 가동 중지 안건을 통과시킴.” “백과 정을 공범으로 구성하는 길은 채증상 매우 험한 길이니, 잘 참고해서 증거가 나오는대로 처리하는 게 정석…” ‘스토리 라인 및 큰 그림 전달’이라는 제목의 이 메모는 감사관들에게 전달한 지침인데, 그 내용이 2020년 10월20일 발표될 감사 결과와 거의 일치한다. 무려 5개월 전에 이미 감사 결론을 정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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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2023년 12월9일 전현희 권익위원장 ‘표적감사’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조사를 받기 전에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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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호는 자신의 ‘큰 그림’과 상반된 진술을 한 백운규와 문신학을 “b쓰레기”, “m걸레”라고 공감노트에 적었다. 그는 산업부 공무원들이 감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맹호처럼, 정 안되면 들개처럼” 조사하라고 감사관들을 독려했다. 탈원전 2차 감사는 1차 감사 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산업부 공무원들은 “검찰 수사보다 더 강압적인 분위기에서”(백운규) 조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장시간 조사에 시달렸다. 문신학은 모두 11차례 감사원에 불려 나갔는데, 2020년 6월에만 8차례나 출석했다. 정아무개 과장과 김아무개 사무관도 각각 11차례와 12차례 출석했다. 한번 출석할 때마다 12시간 이상 조사를 받았다.





“진술, 증거 왜곡하고 인권 침해” 시비 부른 유병호 감사팀





2차 감사는 온갖 불법 논란을 일으킨 감사였다(‘감사 방해’ 무죄를 선고한 법원은 감사원이 디지털 포렌식 과정 등에서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유병호가 이끄는 감사팀(유병호는 이들을 ‘찐타이거’라 불렀다)은 사전 시나리오에 맞는 진술이 나올 때까지 피감사자들을 괴롭혔다. 문신학은 감사위원회에 낸 의견서에서 유병호 감사팀이 “사전 시나리오에 꿰맞추기 위해 사실(증거)과 진술을 왜곡하고, 원하는 진술을 얻고자 인권 침해적 조사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감사관들은 문신학에게 국가관과 공무원의 자세, 국가의 이익이 뭔지 등을 묻고 답변을 들은 뒤 “그걸 아는 사람이 원전을 폐쇄해서 국가적인 손해를 끼쳤느냐”라고 면박을 줬다. 자문 교수를 비롯한 민간인한테도 ‘똑바로 앉으라’,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라며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고, 질문에 반박하면 ‘말이 많으시네’ ‘질기네’와 같은 말로 모욕감을 줬다. 또한 산업부 공무원들이 자기 답변을 따로 기록하지 못하게 했다. 서로 말을 맞출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문신학은 “기록을 금지해 기억 못하게 함으로써 최소한의 방어권마저 제약했고, 진술서 수정 기회도 박탈당했다”고 밝혔다. 앞서 1차 감사 때는 기록과 진술서 수정이 모두 허용됐다.



원전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이 핵심이었던 1차와 달리 2차 감사는 ‘경제성 평가 조작’ 여부에 대해서만 감사를 했다. 원전 폐쇄는 경제성뿐만 아니라, 원전의 안전성과 지역 수용성(주민의 찬반 여론)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유병호 감사팀은 국회 핑계를 대고 ‘반쪽’ 감사를 했다. 그 이유는 유병호가 7월29일 작성한 공감노트의 ‘월성 GO-STOP 2차’라는 메모에 잘 나와 있다. 그는 안전성과 지역 수용성에 대해 “감사과제로서 적절하지 않고, 국회 감사요구의 내용과 취지에 맞지 않아 감사 범위에서 제외했다는 논지로 정리하고 땡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두 달 뒤(9월23일) 메모에서는 “감사 범위에 대하여 한계를 기술하지 않는 사유…(중략) 우리가 검토 한계를 기술하면 저들이 (안전성, 지역 수용성을) 신중하게 검토하지도 아니한 것을 간접적으로 정당화 시켜주는 결과를 초래함”이라고 적었다. 안전성과 지역 수용성까지 판단하면 ‘조기 폐쇄는 불법’이라는 감사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취지였다.





감사위원회에서 퇴짜 맞자 ‘감사 방해’ 들고나오다





그러나 2차 감사 결과도 감사위원회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국회의 핵심 주문 사항이었던 조기 폐쇄의 타당성에 관한 판단 근거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감사팀은 월성1호기의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부당한 폐쇄’의 근거로 제시했지만, 감사위원 다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후 원전의 안전성, 그에 따른 주민들의 불안 등도 조기 폐쇄를 결정한 중요한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무려 6차례나 감사위원회가 열렸지만, 감사위원들은 최재형과 유병호의 의도에 말려들지 않았다. 최종 의결된 감사보고서는 “이번 감사는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안전성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내렸다는 원전 폐쇄 결정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백운규와 청와대 인사들의 직권남용은커녕 정재훈 사장 등 한수원 이사들의 업무상 배임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냈다.



사전 시나리오대로 결론이 내려지지 않자, 최재형과 유병호는 산업부 공무원들의 ‘감사 방해’ 프레임을 꺼내 들었다. 감사자료 삭제 등을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감사위원 다수는 여기에도 반대했다. 감사가 실제로 방해받은 게 없어서 징계로도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무엇보다 정부 정책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인 공무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감사위원회 표결(감사원장 포함) 결과 검찰 고발은 부결됐다.



그러자 최재형은 검찰에 수사 참고 자료를 넘기겠다고 했다. ‘수사 참고 자료 제공’은 감사위원회 의결이 없어도 가능하다. 일부 감사위원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최재형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휘 아래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을 수사하는 등 문재인 정권에 각을 세우고 있었다. 나중에 ‘윤석열 검찰’은 산업부 공무원들뿐 아니라 백운규와 정재훈,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채희봉 산업정책비서관을 직권남용과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감사 요청→최재형 감사원의 감사→윤석열 검찰의 기소로 이어지는 ‘반탈원전’ 커넥션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감사원장과 검찰총장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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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2023년 6월29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재해 감사원장에게 전달할 메모를 적고 있다.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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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감사로 야당에 강한 인상을 남긴 유병호는 윤석열 정권에서 감사원의 실세가 된다. 그는 앞서 문재인 정권 말기에 최재형의 후임으로 임명된 최재해 감사원장에 의해 2022년 1월 한직인 감사연구원장에 임명됐다. 마치 그가 탈원전 감사로 정권에 밉보인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상은 탈원전 감사 직후 공기업 경영 평가 감사를 무리하게 하다 비감사부서로 쫓겨난 것이다. 유병호는 윤 대통령 인수위에 합류했다가 감사원 사무총장으로 복귀해 최재해를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하게 됐다. 2023년 6월29일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야당의 질문 세례를 받던 최재해에게 “심플하게 답변하십시오”라는 메모를 건넨 장면이 이를 상징한다. 최재해는 유병호의 메모와 거의 똑같이 답변해 야당 의원들의 빈축을 샀다.





‘탈원전’엔 철퇴, ‘윤 대통령 부부 관저’엔 솜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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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9월12일 감사원 앞에서 대통령 관저 감사 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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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호가 감사위원으로 영전하기 전까지 총괄 지휘했던 윤 대통령 부부 관저 감사는 탈원전 감사와 정반대였다. 감사원은 2022년 10월12일 시민 723명과 참여연대가 국민감사를 청구한 이 사건을 무려 20개월 동안 끌다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불법 증축과 준공검사 조작 등 여러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결론 내면서도 김오진 당시 청와대 관리비서관 등 관리 책임자를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지난 4일 <한겨레>에 “검찰에 고발도, 수사 참고 자료 제공도 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감사팀은 김건희 여사와 사적 친분이 있는 인테리어업체 ‘21그램’을 누가 추천했는지 김오진에게 물었으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답변만 듣고 말았다. 탈원전 감사였다면 감히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김오진이 사실대로 말할 때까지 계속 소환해 조사하지 않았을까.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은?



‘검찰’하면 떠오르는 말은 ‘법치주의’입니다. ‘법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법치주의는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입니다. 검찰에 막강한 권한을 준 이유도 법치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검찰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 대통령 명예훼손 수사를 한답시고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들을 탄압합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핵심 정책(공약)에 사법적 잣대를 마구 휘두르기도 합니다. 검찰개혁을 추진했던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보복 수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반면,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제 식구는 철저하게 감쌉니다. 법치를 가장한 ‘가짜 법치주의’입니다. 이런 검찰 수사에는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권자인 국민의 시각에서 수상한 검찰 수사를 톺아보겠습니다.





논설위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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