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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김건희 앞에 놓인 세 갈래 가시밭길 [박찬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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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필리핀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6일(현지시각) 필리핀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 도착해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손을 꼭 잡고 내리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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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찬수 대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 요구로 국회로 돌아온 ‘김건희 특검법’은 끝내 부결됐다. 대통령은 거부권이란 방패로 아내를 지키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황은 훨씬 위험해졌다. 국민의힘 의원 중 4명이 당론을 이탈해 특검법에 찬성 또는 기권한 건 여권 내부 불만이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까진 불만이 있어도 꾹꾹 참았지만 이젠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뜻”이라고 어느 국회의원은 표현했다. 당내엔 “친한동훈계가 ‘김건희 사과’를 압박하려 4명에게 반대 또는 무효표를 던지게 했다”는 얘기가 떠돈다.



이제 김건희 여사에겐 세 갈래 길이 놓여 있다. 모두 가시밭길이다. 첫 번째는 지금처럼 그대로 버티는 것이다.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다시 발의해도 남편의 거부권 뒤에 숨어 꿋꿋하게 계속 활동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장 여권 내부에서 갈등이 폭발할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 표결 직후에 한동훈 대표가 대규모 계보 모임을 연 것은 대통령 부부를 향한 정치적 압박의 표현이다. 이번엔 이탈표가 4명이지만 또다시 김건희 특검법을 재표결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숫자는 가결선인 8명을 넘어설 수 있다는 으름장이다.



특검법 재의결에 필요한 숫자(국회 의석의 2/3인 200석)와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필요한 숫자는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 의원 일부의 찬성으로 김건희 특검이 시작되면, “생각하긴 싫지만 윤 대통령 탄핵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고 여당의 또 다른 인사는 말했다.



두 번째는 김 여사가 대국민 사과를 하고 모든 공개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하는 길이다. 여권 다수가 원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김 여사는 추석 전에 대국민 사과를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한다. 문제는 김건희나 국민의힘 모두 이걸로 성난 민심을 잠재울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김건희의 총선 공천개입 논란을 부른 텔레그램 메시지는 단적인 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전화통화를 하고 얼마나 많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아마 자신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할 터이다. 공개 사과 이후에 새로운 통화녹음이나 메시지가 터져 나오면 그땐 걷잡을 수가 없다. 특검과 사법처리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이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한동훈의 정치적 이해가 예리하게 엇갈리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김건희는 자신이 대국민 사과를 하면, 그 뒤엔 여권 전체가 분명하게 자신을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대표 쪽의 생각은 다르다. 사과는 정치적 행위일 뿐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처럼 뚜렷한 혐의가 제기되면 수사를 피할 수 없다는 의견이 국민의힘엔 적지 않다. 2027년 대선까지 생각하면 인사 개입과 공천 개입 의혹까지 여당이 모두 끌어안고 갈 순 없다는 정서가 팽배하다. 김건희가 사과를 망설이는 이유도 이런 기류를 잘 알기 때문일 터이다.



세 번째는 극적인 정치적 반전을 꾀하는 길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아내와 관련한 모든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철저한 수사를 검찰에 지시하는 것이다. 비슷한 전례가 있다. 1997년 2월 아들 현철씨가 한보 사태의 배후란 의혹이 퍼지자 김영삼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 ‘아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검찰에 지시했다. 참모가 써준 회견문 초안엔 ‘아들의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로 적혀 있었다. 이걸 대통령이 직접 ‘사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로 고쳤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는 가능성 제로에 가깝다. 대통령 부부의 오만과 착각 때문이다.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이 구속되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지만, 국민 여론을 먼저 생각했다. 김건희는 다르다. 자신이 윤석열 정권을 지탱하는 버팀목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무너지면 정권이 무너질 거라 여긴다. 대통령 부인에겐 수많은 정보가 몰린다. 그 정보가 협소하고 편향되고 민심과 동떨어졌을 거란 생각은 하질 못한다. 그러니 뜬금없이 마포대교에 나가 민정 시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꼬박꼬박 대통령 해외순방의 옆자리를 지킨다.



세 갈래 길의 어느 쪽을 택하든 그 끝에 김 여사가 안식을 얻을 자리는 없다. 첫 번째는 물론이고, 두 번째 길도 돌고 돌아 특검으로 연결된다. 세 번째 길은 특검 아닌 검찰의 포토라인에 선다는 것 정도가 다르다. 가족의 비리 또는 권력남용에서 자유로웠던 역대 대통령을 찾긴 어렵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권 몰락의 핵심 동인으로 작용하는 건 처음이다. ‘김건희 정권’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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