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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기자의 시각] ‘24시간 군인대출’ 오늘도 성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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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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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론(Loan)’ ‘병장론’ 등 광고 문구를 내걸고 현역병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사설 대부 업체 중 한 곳에 접촉한 시각은 지난 2일 오후 10시가 넘어서였다. 내년 병장 월급은 205만원. 상당수 병사들이 이 돈을 모아 코인에 투자하다가 실패, 사설 대부 업체에 손을 빌리는 실태를 취재하려 했다. ‘24시간 군인 대출’이라는 홍보 문구에 “이 시간에 설마 되겠나” 싶었다. 하지만 “현역 군인 대출이 가능한가”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기자 답변이 오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분이었다. 담당자는 “소속 부대, 계급, 신용 점수 등 정보를 남기면 심사 후 당장 내일이라도 300만~500만원 대출이 실행된다”고 했다.

군 관계자는 “대부 업체들이 돈 냄새를 제대로 맡았다”고 했다. 의식주를 자기 돈으로 해결하는 간부와 달리 병사들은 마음만 먹으면 돈을 거의 쓰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하다. 몇 달만 월급을 저축해도 수백만원 돈이 모인다. 사설 대부 업체들이 내건 이자는 연 20% 안팎이다. 나라에서 돈이 꼬박꼬박 나오는 병사들의 통장을 합법적으로 털어가는 셈이다. 인터넷엔 ‘코인을 하다가 대부 업체에서 수백만원을 빌렸는데 벌써 1000만원이 넘었다’ ‘이자를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되게 생겼다’ 같은 사연이 수두룩하다.

4년 전 현역병들의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이 전면 허용됐다. 요즘 병영은 과거처럼 고참병이 후임병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던 ‘침상형 내무반’이 아니다. 10명도 안 되는 동기들끼리 지내는 ‘침대형 생활관’이다. 오후 6시 일과가 끝나면 휴대전화 화면에 코를 박고 코인에 몰두하는 광경이 일상적이라고 한다. 일부 병사들은 도박에까지 손을 댄다. 지난 7월 전역한 신모(23)씨는 “생활관 전체가 불법 도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2022년 병영 내 299건이던 불법 도박 범죄가 지난해에는 440건으로 1.5배 가까이 증가했다.

병영 내 코인·도박 문제가 심각하다는 본지 보도가 나온 지난 4일, 국방부는 ‘군 장병 불법 도박 대응 매뉴얼’을 전군에 배포했다. 국방부는 ‘코인 광풍’이 불었던 수년 전 장병들의 코인 투자 규제를 검토했지만 기본권 침해 소지로 물러서기도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병사들 파산이나 개인 회생까지 지원하기엔 힘이 부친다”며 “군대가 그런 것까지 하는 곳은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일각에선 과거 정부의 월급 인상이나 휴대전화 허용이 문제라며 “우리는 몇 만원 받고 박박 기었는데 요즘 애들이 문제”라고도 한다. 하지만 20대 청춘을 국방 임무에 바치는 젊은이들에게 월 200만원 월급이 많다고 할 순 없다. 국가가 월급을 모아 만기 전역 후 일시 지급하는 등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일선 병영이 코인·도박판이 되거나, 병사들의 월급 통장이 사설 대부 업체들의 먹잇감이 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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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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