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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타향살이’ 환대할 준비 [서울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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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설악산을 비롯한 강원지역 유명 산들이 단풍 절정기에 접어든 지난해 10월22일 양양군 오색∼한계령 휴게소 구간 도로가 행락객 차량으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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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 지역 신문을 읽는다. 지역 신문에는 전국 신문이나 온라인 언론사 기사에서 볼 수 없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강원도 여러 지역의 각종 현안이나 소식을 다룬 기사에서 큰 틀은 비슷하고 살펴보면 조금씩 다른 고민을 만난다. 지역 신문에서 가장 낯설었던 건 지역 연고 인사를 다루는 방식이다. 중앙 정부의 내각 개편 시기에는 강원도 출신 장관이 몇명이나 나올지 예측하는 기사가 실리고, 문화나 스포츠면에는 강원도 출신 인사의 신작 소개나 경기 결과가 실린다. 지역에 밀착한 소식을 전한다는 지역 신문의 취지에 부합하는 기사라고 생각하다가도 한편으로는 고향 혹은 출신이라는 연결고리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러한 방식이 당연한 것인가 하는 물음도 떠오른다.



양양으로 이주할 때 주위에서 의아하게 여겼던 이유 중 하나가 이곳이 ‘연고가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의 고향이 아니었고, 서핑을 하느라 오간 곳도 아니었다. 우리가 집을 산 날은 양양에 두번째 방문했을 때였다. 심지어 첫번째는 양양이 아니라 속초로 알고 다녀갔다. 지연도 학연도 혈연도 없는 곳에서 6년째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이건 내가 고향으로 대표되는 연고주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경상남도 김해가 고향이고 그곳에 어머니가 여전히 살고 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김해를 떠났고, 대학생이 된 뒤 살기 시작한 서울에서는 고향보다 더 오래 살았다. 노스탤지어(향수)를 느끼는 장소 역시 고향보다는 고교 시절을 보낸 거창이나 대학 졸업 뒤 살았던 도쿄이다. 내게 고향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라는 감성적 의미보다는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는 사실의 서술에 가깝다. 그래서 종종 고향도 아닌데 왜 양양으로 왔냐는 질문을 받으면 오히려 이상했다. 고향이기에 더 애틋하지 않은 것처럼 고향이 아니라서 더 낯가릴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입장과는 달리 여전히 한국에서 연고주의는 힘이 세고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것을 양양에서 살면서 자주 느낀다. 하지만 지방 소멸의 흐름에서 지나친 연고주의는 큰 걸림돌이다. 최근 20년 동안 매해 국내 출생아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태어났고, 출생아의 고향 중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도 증가 추세인 상황에서 ‘우리 고향·지역 사람’을 우선으로 여기는 풍토는 지역의 경쟁력을 낮출 뿐이다. 지금 당장은 고향이라는 공감대를 내세워 공동체의 결속력을 다지거나 중앙 권력의 관심과 애정, 나아가 영향력을 나눠 받는 게 달콤할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향후 고향이라는 이유로 지역을 찾거나 이주할 가능성을 가진 사람의 절대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고향을 따져 묻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한 전략이 아니다.



이곳이 고향인 청년들도 일자리와 더 많은 기회를 찾아 떠나고 있다. 반면 고향이 아니지만 마음이 끌려서 찾아오고 이주하는 사람들이 지역에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냈다. 생활·관계 인구가 소멸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그럴듯한 방책으로 행정 문서 속에서 남발되고 있다. 정주 인구에 목매기보다 생활·관계 인구에 주목하는 것은 더 유연하고 현실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아직 지역의 폐쇄적인 풍토는 이들을 충분히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환대는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사회 내에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다. 더 많은 사람이 서울·수도권이 아닌 삶의 가능성을 마음에 품으려면 고향이 아니어도 연고가 없어도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든 환영받을 수 있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낯선 이를 환대하는 것이 지금 지역이 가장 먼저 취해야 할 전략이자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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