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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담배와 스마트폰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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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해악은 이미 수많은 연구와 사례로 확인된 바 있다. 하지만 서구에서 담배가 여성해방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흡연은 남성 중심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해방적 몸짓으로 칭송받았다. 1929년 부활절에 미국에서 수십명의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며 거리를 행진한 ‘자유의 횃불’ 사건이 도화선이 됐다. 이 기획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조카이자, ‘홍보의 아버지’로 알려진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담배 회사를 위해 기획한 마케팅의 하나로 밝혀졌지만, 진보주의 여성들이 기성 질서에 맞서는 행위로 이용하기도 했다.

인류 진보의 위대한 성과로 여겨져온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술이 청소년들에게 담배나 술 못지않게 해롭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지부의 국가 건강정책·시스템 책임자 나타샤 아조파르디무스카트는 한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이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해악이 커지고 있다면서 연령 제한, 가격 통제, 금연 구역 설정 등과 같은 강력한 담배 규제책을 스마트폰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3년 미국 ‘타임’의 ‘인공지능 100대 인물’에 선정된 아베바 비르하네 아일랜드 트리니티대 교수도 지난 6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스마트폰과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거대 기술기업들이 담배 회사 못지않게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로비를 포함해 담배 회사들이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용하는 온갖 방법을 거대 기술기업이 따라 하고 있지만,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줄 솔루션이자 위대한 진보로 대중의 지지를 업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위험하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초·중·고 일부 교과에 대해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가 도입된다. 수준별 교육, 맞춤형 교육을 통해 학습 효과를 높인다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학부모, 교사 등의 반발이 거세다. 디지털 기기 사용이 아동·청소년들의 집중력, 문해력을 약화한다는 불안감도 높다. 스웨덴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일정 연령 이하 아동의 디지털 학습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마당에, 디지털 강국을 표방한 한국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 도입하겠다며 속도를 내는 상황이다.

인공지능을 외면하고 살 수 없는 시대다. 청소년들이 인공지능을 자기 주도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인공지능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를 성찰하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인공지능 디지털 교과서 도입보다 절실하다.

한귀영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연구위원 hgy4215@hani.co.kr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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