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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 (월)

[책의 향기]아름다움을 보면, 아름다움이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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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버드의 노래/크리스천 쿠퍼 지음·김숲 옮김/412쪽·1만8500원·동녘

동아일보

몇 년 전, 미국 보스턴 교외에 머문 적이 있다. 작은 잡화 가게 하나를 빼면 가정집밖에 없는 변두리였는데, 집집마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고 쓰인 팻말이 마당에 꽂혀 있었다. 영화나 뉴스에서만 접할 뿐 인종차별을 피부로 접한 적은 없었는데, 미국 남부 시골도 아닌 대도시에서, 그것도 바로 인근에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있는 지역도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1960, 70년대도 아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한 지 이미 5, 6년이나 지났을 때였는데 말이다.

새를 탐조(探鳥)하는 걸 도피처이자 동시에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로 삼았던 저자가 흑인이자 성소수자로서 살아온 인생을 진솔하게 고백했다.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새를 관찰하던 저자는 목줄을 하지 않은 반려견을 발견하고 주인인 백인 여성에게 목줄 착용을 부탁한다. 하지만 이 여성은 되레 저자가 자신을 위협한다고 신고할 거라 했고, 저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 순간을 촬영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이날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날(2020년 5월 25일)이기도 하다. 저자가 올린 영상은 SNS에서 확산하며 미국 사회에서의 인종차별을 가시화시켰다. 그리고 그의 인생도 전과 달라졌다.

‘큰검은찌르레기를 정성 들여 관찰한 건 수년 동안 이번이 처음이었다. … 나는 큰검은찌르레기를 비뚤어진 시선이 아니라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 누군가가 아름답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가끔 관점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4장 ‘다른 방식으로 보기’ 중)

읽는 내내 느껴지는 것은 분노와 절망, 복수 같은 감정이 아니라 덤덤함이다. 마치 제3자처럼 차분하게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더 호소력이 있는 듯. 부제 ‘흑인, 퀴어, 우아한 탐조자로 살아온 남자의 조용한 고백’.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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