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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책&생각] 아련하게 돌아보라, 외롭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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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하게 돌아보라. 레트로 콘셉트의 뉴진스 ‘디토’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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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지음, 손성화 옮김 l 어크로스 l 2만2000원



선명한 가르마에 이마에 붙인 머리, 흰색과 청색의 교복과 베이지 가디건의 소녀들. 자전거를 타고 앞자리 친구의 등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창가에서 나무를 바라보고 도서관 바닥에 털썩 앉아 책을 읽고 동아리방 소파에서 함께 잠이 든다. 뮤직비디오 화면은 가정용 소니 비디오처럼 거칠고, 후지필름 인화지처럼 톤다운되어 있다. 앨범은 픽셀선을 강조한 바탕에 선으로 그려진 토끼, 팀 이름은 뉴진스. ‘디토’(2022년)에는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있다. 뉴진스가 아니더라도 ‘뉴트로’가 한창이던 그때, 진로는 ‘진로이즈백’으로 돌아왔고, 대한제분 곰은 상표로 패딩과 맥주캔으로 진출했다. 진로 출시는 1970년, 곰표는 1952년의 상표를 되살린 것이다. ‘소년시대’(2023)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년)는 모두 ‘추억 소환’ 작전으로 시청자의 눈을 집중시켰다.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을 표방한 티브이엔(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1997년·1994년·1988년을 소환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리운 시절은 ‘박정희 독재시대’(1961년~1979년), 겪어본 적도 없는 ‘일제시대’기도 하다. 이 노스탤지어 현상은 세계적이다. 넷플릭스 개국(2007년) 이후 가장 성공한 시리즈는 ‘기묘한 이야기’이고, 코카콜라는 마케팅이 필요할 때마다 병에 콜라를 주입하며, 넷플릭스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2023)의 사춘기 아이 로즈는 ‘프렌즈’(1994년~2000년)를 챙겨본다. 앨빈 토플러가 ‘미래의 충격’에서 말한 ‘노스탤지어의 물결’의 현현이다. 대상이 경험했든 경험하지 않았든, 감정은 비슷하다. 애틋하고 감상적이다. 시리도록 그립다.



노스탤지어,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지난 시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고 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한국어의 번역은 ‘향수’다. 영국의 감정사학자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의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는 노스탤지어의 전기다. ‘그’는 기구한 운명 속에서 태어나 의미가 극적으로 변하는 시기를 겪고 지금 전성기를 맞고 있다.



노스탤지어는 ‘감정’(emotion)이지만 감정이라는 단어보다도 먼저 세상에 나왔다(감정은 1830년대에 처음 나타나 1862년 이후에나 널리 수용된다). 17세기의 마지막 해(1699년) 의사 요하네스 호퍼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극심한 갈망’으로 인해 병을 얻고 심한 경우 죽을 수도 있는 환자를 진단하고, 이 병에 노스탤지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노스토스(귀향)와 알고스(고통)을 합친 단어였다. 1710년 스위스 의사 츠빙거는 스위스 민요 ‘휘헤라이엔’이 일으키는 죽음을 병례로 삼았다. 이 민요는 우유를 짤 때 부르는 노래인데, 타향에서 이 노래를 들은 스위스 용병들은 눈물을 쏟았고 너무 고향을 그리워한 나머지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병영에서 이 민요는 아예 금지되었다. 1837년 이집트 군대에서 수단 출신 징집병이 노스탤지어로 사망한 사람은 1만8000명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북아프리카인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을 ‘마음이 약해서’라고 비웃던 백인들은 남북전쟁 기간(1861년~1865년) 비슷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은 뒤에야 웃음을 거두었다. 전쟁 뒤 2년에 2588명이나 병 진단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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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2016년 트럼프 캠프의 구호는 1959년 영국의 보수당 선거,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의 대선 슬로건(사진)이었다. esty 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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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에서 그리움의 대상은 ‘장소’(고향)에서 ‘시간’(지난 시대)으로 극적인 변동을 겪는다. 비슷한 시기, 병증이었던 노스탤지어는 ‘향수병’으로 분화되고, 노스탤지어는 이 ‘병’이 빠지면서 감정만이 남게 된다. “옛날에는 헤어지고 나면 언제 만날지 모르니까… 저 사람과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 비행기나 전철, 전화도 없던 때였고 일단 헤어지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일본 영화 ‘일일시호일’(2018년)의 말대로 이 변화는 현대인이 기억하는 근래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민에게서는 흔한 일이다. 멕시코 이민자들은 비이민자들에 비해 우울 및 불안 수준이 40%나 높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은 우주선이 아니라 타임머신.” 1960년대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매드맨’ 시리즈(2007년~2015년)의 초반 에피소드 ‘휠’(Wheel)에 나오는 말이다. 본능적 전략가 돈 드레이퍼는 ‘사람들의 감정을 북돋아 상품을 파는’ 전략을 설명하고, 그것을 들은 베테랑 카피라이터는 “노스탤지어는 오래된 상처로 인한 통증이라는 뜻”이라며 “기억 자체보다 훨씬 강력한 가슴 저릿한 통증”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딘가로 데려갈 (바퀴로 굴러가는) 자동차가 아니라, (동그랗게 돌아가는) 회전목마라고 통찰한다.



노스탤지어는 광고가 부추기거나, 역사의 반동으로 형성되기도 한다. 1970년대의 레트로 붐은 1960년대의 세상의 질서가 뒤집히는 혁명 뒤에 왔다. “남자, 여자, 습속, 예의, 법, 사회, 신에 대한 본질적이고 강한 신념이 그토록 도전받고 분쇄되고 흔들리는 경험을 한 영향”이라는 것이다. 같은 시기 1977년에는 히틀러 연설 엘피(LP)판이 차트에 올랐고 그 시대 발행된 우표 수집이 열기를 띨 만큼 나치 노스탤지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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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p Calm and Carry ON’ 포스터는 1939년 세계대전을 준비하던 영국정부가 국민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250만부나 인쇄한 포스터였다. 전시에는 내걸리는 일 없이 있다가 2000년에 서점에서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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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비참하고 극빈한 삶을 살았던 고국이 어째서 노스탤지어 환자들에게는 동화의 나라가 되는 것일까.” 그러니 헝가리를 떠나와 독일을 거쳐 미국에 정착한 낸더 포더라는 저술가가 1949년 이렇게 말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는 더 나아가 유토피아와 노스탤지어를 연관시키면서 노스탤지어가 ‘환상’에 근거한다고 말한다. 비슷하게 “과거의 실체는 현재 사람들이 노스탤지어를 느끼는지 여부, 또는 노스탤지어를 얼마나 강하게 느끼는지 여부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프레드 데이비스)



노스탤지어의 유행에 대해 ‘퇴영적’이라는 주장을 펴곤 하지만, 18세기부터 현재까지를 횡단한 저자가 보기에 이런 해석이야말로 ‘반복적·퇴영적’이다. 1970년대나 1990년대나 ‘옛날이 좋았어’라는 생각은 ―어디에도 없는 땅이라는 뜻의 유토피아와 반대로― 언제나 있어왔기 때문이다. “우리 조부들이 평생에 걸쳐 처리해야 했던 것보다 많은 정보를 한 달 사이에 처리해야 한다.” “도저히 손에서 ○○를 놓지 못해서… 내가 이것 없이 과연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혼자서 골몰(…)” 각각 1860년대 의사, 1665년 일기다. ○○속 단어는 ‘시계’다. 진보나 보수나, 좌파나 우파나 이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노스탤지어는 어떤 생물학적 이점이 있기에 인간에게 존재하는 감정일까. 옛날에 대한 그리운 감정을 특정하는 ‘노스탤지어 검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감정을 느끼는 정도가 강렬한’ 쪽이었다. 자기공명영상에서 ‘노스탤지어 뇌’는 자기 성찰, 자전적 기억과 장기기억, 감정 조절, 보상 과정과 관련된 네 개 영역이었다. 그중 보상 과정 뇌는 자극을 받으면 도파민이 분비되고 이것이 해마에 쌓이면 사건 소환 능력이 향상된다.



“노스탤지어는 일종의 정서적 갑옷이다.” 실험을 통해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과거에 빠졌다. 저자는 노스탤지어는 혼자 있을 때 “마음을 사람들로 채”우는 사회적 감정이라고 말한다. “친절한 은행대출 담당 직원이 호언장담하듯, 현재의 가치는 미래에 대해서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주장할 권리가 있다.”(프레드 데이비스) ‘집에 가고 싶을 거야…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자이언티 ‘꺼내먹어요’, 2015년) 노래처럼 저축한 기억이 많으면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노스탤지어로 인지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연결된다. 우선 외롭지 않아야 한다. 이 책의 가장 정치적인 말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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