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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책&생각] 경찰 소설과 정통 추리의 절묘한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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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가연물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l 리드비(2024)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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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면을 상상해 보자. 어느 맑은 날, 한 신사가 탐정을 찾아온다. 탐정은 대뜸 신사의 하인이 최근 심한 감기에 걸리지 않았느냐고 하고 신사는 깜짝 놀란다. 셜록 홈스나 미스 마플의 팬이라면 이 탐정이 귀추법과 유비추리를 사용했으리라는 것을 안다. 귀추법은 어떤 사건에서 a, b, c의 요소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모두 포함하는 가설 A가 있다면 이 가설을 사실이라고 추론하는 방식이다. 신사의 재킷과 모자는 기본적으로 잘 손질되었지만, 바짓단에는 진흙이 튀어 굳었다. 그래서 탐정은 성실한 하인이 며칠 전 비 내릴 때 병에 걸렸으리라는 가설을 제시한 것이다. 유비추리는 한 사건의 진실을 다른 사건과의 유사점으로부터 연상하는 방식이다. 탐정은 최근 하인이 심한 감기로 앓아누워 살림이 엉망이 된 부인을 안다.



다만 이렇게 딱 떨어지는 추리는 허구에서만 가능하다. 현실에는 예외가 너무 많다. 또, 가설을 선택하거나 동일성을 유추하는 데는 편향적 사전 정보가 작용한다. 현실성을 중요시하는 경찰 소설과 논리 게임에 가까운 정통 추리가 어긋나는 지점이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가연물’은 이런 위화감을 극복하고 경찰 수사물의 틀 안에 정통 추리를 구현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경찰 미스터리라고 설명한다. 많은 경찰 소설은 조직 내에서 고군분투하는 직업인으로서 수사관을 그리는 데 초점을 둔다. ‘가연물’은 군마 현경 본부 형사부 수사 1과 가쓰라 경부의 활약을 그리지만, 증거를 모아 진실을 맞히는 고전 미스터리적 면모가 강하다. 소설은 경찰 조직이나 수사 체계를 언급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수집된 사실을 기반으로 독자와 수사관, 둘 중 누가 먼저 진상을 파악하는지 경쟁하는 두뇌 게임의 재미를 추구한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고전 추리의 요소를 다양한 양식으로 변형하는 기술이 탁월한 작가인데, ‘가연물’에서는 깔끔한 스타일이 돋보인다. 여기에는 설산 조난 중에 일어난 살인, 강도 사건 피의자가 일으킨 교통사고 관련 증언, 산기슭 산책로에서 발견된 토막 시체의 진실, 지역 내 소소한 방화 시도, 패밀리 레스토랑 인질극 등 현실감이 있는 사건이 수록되었다. 이 사건들을 맞닥뜨린 가쓰라 경부는 귀추법으로 추리하지만, 먼저 떠오른 가설에 뛰어들지 않고 또 다른 가설이 존재할 가능성까지도 신중하게 점검한다.



이를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다섯 번째 단편인 ‘진짜인가’이다. 인질극이 일어난 식당 안에는 상해 전과 1범인 남자가 있고, 그는 권총처럼 보이는 물건을 들었다. 이자가 진범이라면 사건은 간단하다. 그러나 간단한 해결이 늘 진실은 아니다. 가쓰라 경부와 독자들은 여러 증언을 조합하여 식당 안에서 벌어지는 일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



‘가연물’은 범죄를 묘사하는 사회 소설의 의미도 있지만, 지적 논리 게임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도 있다. 편견을 피하려면 어려운 길로 가야 한다. 수사관은 과거의 데이터 및 유사 경험으로 진상을 추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가장 쉬운 결론에 빠지지 않고, 사전 지식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않으며, 증거에 집중하는 사람만이 진실에 다다른다. 현실에서든 소설에서든 우리가 기대하는 합리적인 경찰, 그리고 합리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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