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l 비룡소(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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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앞두고 책 정리를 하다가 차경아 번역으로 1977년 출간된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찾았다. 활판으로 인쇄된, 누렇게 색이 바랜 책장을 넘기다 급기야 주저앉아 읽기 시작했다. 그때 그 시절 ‘모모’는 한자를 병기했고, 문학적인 표현이 많았다. 아마 어른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다. 반면 비룡소 버전의 ‘모모’는 어린이 독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언어로 번역된 것이 특징이다.
열일곱 살의 나는 시간을 주제로 삼은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과 비교하면 참으로 시간이 많은 청소년이었다. 입시 부담이야 있었지만, 학원도 다니지 않았다. 집안일을 도운 것도 아니고 돈을 벌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책 속에는 휴지가 잔뜩 끼워져 있었다. 책을 읽다가 마음을 울리는 대목이 나오면 두루마리 화장지의 한 칸을 찢어 끼워 넣는 것이 당시 내 읽기 습관이었다.
폐허가 된 원형극장에서 사는 고아 소녀 모모는 친구가 많다. 먹을 걸 나눠주고 집을 고쳐준 마을 사람들뿐 아니라 도로청소부 베포와 관광안내원이자 이야기꾼 기기도 있다. 도로청소부 베포가 들려준 길고 긴 도로를 청소하는 법은 다시 읽어도 뭉클했다. 베포는 도저히 청소를 다 할 수 없을 만큼 긴 길을 만나면 서두르게 되는데, 그러면 결코 청소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관광안내원 기기가 들려준 아우구스티나 여왕의 금붕어 이야기와 더불어 작품 전체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다시 읽은 ‘모모’는 상징으로 빚어낸 알레고리처럼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이 회색 인간들의 꼬임에 빠져 시간을 저축하는 대목도 여전히 유효했다. 이발사 푸지는 “내 인생은 실패작이야. (…) 제대로 된 인생을 살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거든. (…) 하지만 나는 평생을 철컥거리는 가위질과 쓸데없는 잡담과 비누 거품에 매여 살고 있으니” 하고 불평을 하자 바로 회색 신사의 방문을 받는다. 결국 손님과 나누던 대화를 줄이고, 늙은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 1시간과 휠체어에 의지해 사는 다리아 양에게 꽃 한 송이를 선물하는 30분의 시간마저 아끼게 된다. 시간을 아끼게 된 사람들은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근사한 옷을 입을지언정 언제나 못마땅한 기색과 피곤하고 불안해하는 얼굴을 감추지 못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조차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더는 모모를 찾아오지도 않는다.
시간을 아낀다는 건 효율적으로 산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슴으로 느끼지 않는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다. 삶이 시간이고 시간은 저축할 수 없다. 시간이란 시계로 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순간 피어나는 시간의 꽃은 저마다 아름다운 법이다. ‘모모’는 이 쉽고도 어려운 진리를 회색 신사가 시간을 훔친다는 설정으로 우화처럼 들려준다.
모모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을 돌아보고, 기기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을 잊는 여유만 잃지 않아도 시간 도둑에게 덜미를 잡히는 일은 없을 테다. 열일곱 살의 나는 나름 시간 도둑을 피해 살고 있었나 보다. 초등 고학년~청소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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