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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생각없이 사는 줄 아셨죠?”… 티끌만한 뇌 속에도 우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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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구팀, 국제학술지 발표

초파리 신경 세포 14만 개… 성체 뇌 전체 지도 첫 완성

나노 단위로 신경세포 관찰… 음식 맛 보는 메커니즘 분석

동아일보

성체의 전체 뇌 지도가 완성된 노랑초파리. 위키미디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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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만 개의 신경세포와 5000만 개 이상의 신경세포 간 연결(시냅스)을 확인한 성체 초파리의 전체 뇌 지도가 처음으로 완성됐다.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종의 뇌 기능을 더욱 자세히 밝힐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말라 머시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이끄는 국제 공동연구팀은 초파리 종인 노랑초파리 성체의 완전한 뇌 구조를 규명하고 이를 활용해 초파리 뇌의 다양한 정보처리 과정을 확인한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 7편을 1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정교한 행동의 근간이 되는 뇌 기능은 신경세포의 활동과 신경세포 간 연결에 의해 좌우된다. 신경세포들이 어떻게 연결됐는지 확인하면 생물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한 신경세포의 활성화가 다른 신경세포의 활성화를 강화하거나 억제하는 패턴은 뇌에서 정보가 처리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초파리는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의 수가 800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를 가진 인간의 뇌보다 약 100만 배 적지만 뇌 기능을 활용한 정교한 활동을 수행한다. 비행을 하며 주변을 탐색하거나 동료 초파리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등 복잡한 행동양상을 보인다. 과학자들은 이처럼 복잡한 행동을 수행하는 초파리의 뇌 지도를 다양한 생물종의 뇌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밝힐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완성된 초파리 뇌 지도는 지금까지 작성됐던 뇌 지도 중 가장 큰 규모다. 2023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초파리 애벌레에서 3016개의 신경세포와 54만8000개의 시냅스를 나타낸 뇌 지도 ‘커넥톰’을 완성했다. 이어 서배스천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주도하는 연구팀은 초파리 뇌 반쪽에 존재하는 2만 개의 신경세포와 1400만 개의 시냅스를 규명한 지도를 완성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이번에 완성된 지도는 기존에 가장 정교했던 초파리 뇌 지도보다 약 7배 더 많은 13만9255개의 신경세포와 4배 더 많은 5450만 개의 시냅스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간 학계에서 보고된 적 없었던 새로운 뇌세포 유형 8400종을 새롭게 찾아냈다.

방대한 양의 신경세포의 모양과 위치를 확인하는 데 전자현미경이 사용됐다. 전자현미경은 일반 현미경과 달리 물체를 비출 때 빛 대신 진공상태에 놓인 전자의 움직임을 파악해 대상을 관찰할 수 있다. 연구팀은 전자현미경으로 얻은 이미지를 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까지 나타내도록 해상도를 높여 아주 작은 크기의 초파리 뇌 신경세포를 관찰했다. 수백만 개의 이미지에서 신경세포의 모습을 구별하는 복잡한 작업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밀한 초파리 뇌 지도는 뇌 활동의 메커니즘을 아주 높은 정확도로 밝혀냈다. 초파리가 미각을 처리할 때 뇌 기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뇌 지도를 기반으로 164개의 메커니즘을 예상했다. 각 메커니즘을 분석한 결과 최대 90% 이상의 정확도로 초파리의 미각 처리 뇌 메커니즘을 예측해낸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기점으로 뇌 기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예측에 머물렀던 기존 연구가 실질적인 뇌 활동을 확인하는 연구로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후속 연구에서는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의 초파리 뇌 지도를 완성해 이들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이번 연구에서는 시냅스의 전기적,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는 모습은 담아내지 못한 만큼 신경세포가 상호작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관찰하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정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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